2007년 08월 21일
디워, 고질라와 퇴마록 어디쯤
고질라/ 미국 본토에서 별 재미를 못 봤던 <고질라>가 1998년 여름, 이 땅에 상륙했다. 미국에서도 평론가들의 각종 악평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1억 2천만 달러짜리 재앙'이라는 꼬리표를 이 곳에서도 그대로 매단 채 <고질라>는 우리 여름 극장가를 습격했다. 하지만 그 곳에는 이미 한 달 전에 선수를 치고 자리를 잡은 경쟁자가 하나 있었다. 바로 <여고괴담>. 결국 <고질라>는 <여고괴담>을 넘어서지 못했고, 그 해 여름의 왕좌를 <여고괴담>에게 내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고질라>는 명색이 헐리웃 블럭버스터였고, 그 때문에 어느 정도의 관객몰이는 할 수 있었다. <여고괴담>에 밀렸고, 그보다 수 년 전 선보였던 <쥬라기 공원> 때문에 신선함은 떨어졌지만 실사와 다름없는 헐리웃 특수효과와 CG에 대한 기대 때문에 우리 관객들의 발걸음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걸로 보인다. 물론 특수 효과에 무감각해진 요즘엔 그럴 일이 없겠지만 말이다.퇴마록/ 공교롭게도 같은 해인 1998년 8월, '한국형 블럭버스터'란 문구를 내세우며 제작비 30여 억을 투입한 우리 영화가 개봉했다. 소설 '퇴마록'을 원작으로 한 SFX 영화 <퇴마록>이다. 이 영화는 청룡영화상에서 기술상을 받았는데 당시 우리 영화에선 보기 드물게 특수 효과를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덕택에 이 영화는 전국에서 7~80만의 관객을 끌어들이며 그 해 흥행작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주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원작 소설의 캐릭터들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데다가 내용 전개마저 형편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퇴마록>은 우리 영화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이 영화 이후부터 우리 영화에 등장하는 특수 효과들이 눈에 띄게 좋아진 거 같거든. 어디까지나 개인적 생각일 뿐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으면 싶다.
디워/ 내게 이 영화는 딱 <고질라>만큼의 영화였다. <쥬라기 공원>과 비교하지 않은 것은 이 영화에 대해 평론가들이 경기를 일으키진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평론가들이 경기를 일으켰다 해도 나는 나대로 히히거리며 <고질라>를 봤고, 또 <디워>를 봤다. 그리고 <디워>가 그냥 영화가 아닌 '우리' 영화 <디워>가 되었을 때, 그 상황은 내 머리 속에서 <퇴마록>이란 기억을 끄집어냈다. 알맹이 부실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처음 시도된 SFX 영화'로 기억되는 영화. 오해는 말자. <디워>의 내용이 <퇴마록>만큼 부실하단 얘긴 아니다. 내가 강조하려는 건 어디까지나 '우리'에 있지 '부실'에 있지는 않다. 결국 어쩌다보니 <디워>는 내게 있어서 <고질라>와 <퇴마록> 사이 어디쯤에 놓인, 그런 영화로 인식되고 말았다. 실감나는 특수 효과에 의해 완성시킨 거대한 스펙터클로 짜임새 부족한 이야기를 휘어잡은 우리 영화, 우리나라 영화, 대한민국 영화. 뭐, 여기까지는 상관없다. 그래도 여전히 영화니까. 그런데 <디워>는 놀랍게도 그쯤에서 멈추지 않았다. 영화를 둘러싼 그 무언가를 놓고 사회가 시끌벅적해지면서 <디워>는 영화에서 예언으로 그 자리를 옮기는 중이다. 심형래 감독은 미국 시장 진출과 성공이라는 개인적 꿈을 영화를 통해서도 보여준다. 우리나라 이무기가 영화 본고장인 미국을 무대로 용이 되어 승천하고, 그 용의 모습은 동양의 이미지이며, 여주인공 새라에겐 운명에 순응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전통적 우리 어머니상이 투영된다. 그러니 이거 완전히 한국 영화, 특히 심형래 감독의 헐리웃 침략기 아닌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심형래 감독의 열정이자 꿈의 결과물이며 영화의 내용일 뿐이다. 그 내용을 예언으로 만들어 가는 건 심형래 감독 본인도, 영화 그 자체도 아닌 <디워>의 열성 팬들이다. <디워>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날라치면 과감히 덤벼들어 초토화시키려는 그들은 스스로를 '이블 제너럴'화, '불코'화시켜 심형래 감독을 악한 이무기인 '부라퀴'로 변질시키려 한다. 1000만 관객 돌파로 용이 되어 승천할 거라고? 제작비에 따른 손익분기점이 1000만이라고 하면 그 정도로 승천했다고 할 순 없다. 솔직히 그 수를 훨씬 넘어선다 해도 여러 사람들이 상처를 받은 이상, 승천 운운하는 건 웃기는 얘기다. 500년 전, 이 땅에서 승천하지 못한 두 이무기는 장소를 미국으로 옮겨 다시 때를 기다린단다. 난 심형래 감독이 이름 없는 선한 이무기로 남아 용이란 이름을 얻어 승천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디워>가 예언으로서 발걸음을 내딛는 건 여기서 멈춰야 한다. 그건 심형래 감독이 해야 할 일도 아니고, 평론가들이 해야 할 일도 아니다. 그것은 토론 프로그램까지 등장시키면서 한바탕 쇼를 벌인 관객들, 그리고 삼성이니 월드컵이니 박태환이니 굵직한 것들에만 매달리는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아무도 안 한다면? 결과는 이렇게 되겠지. 쇼X쇼=쇼, 쇼X쇼X쇼=쇼, 쇼X쇼X쇼x쇼=쇼, 쇼X쇼X쇼x쇼x쇼...
제목 : 디워(2007년)
감독 : 심형래
출연 : 제이슨 베어(이든), 아만다 브룩스(새라), 로버트 포스터(잭), 크레이그 로빈슨(브루스), 마이클 샤머스 윌레스(이블 제너럴), 크리스 멀케이(프랭크), 존 알레스, 민지환(보천), 현진(하람), 반효진(나린), 엘리자베스 페냐
# by | 2007/08/21 12:22 | 영화...또다른 현실 | 트랙백 | 덧글(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