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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쇼

 

일상들, 데굴데굴 82

 
1. 흰 수염고래

지난 주말 몸이 안 좋아서 내내 집에 처박혀 있었다. 면도도 안 하고 아침에 세수만 하고 나서 하루 종일 여기서 데굴, 저기서 데굴. 몸은 피곤한데 이상하게 잠은 오지 않아 퀭한 눈으로 어머니와 야구를 보기도 했다. 어머니 여지없이 한마디. '저것들 또 져.' 이번엔 과장이 아니었다. 내리 세 번을 졌으니 그런 말 들어도 싸지. 어쨌든 무거운 눈꺼풀과 왕성한 정신 활동 사이에서 기진맥진할 즈음, 문득 거울을 봤는데 무언가가 턱에서 반짝거리는 것이다. 면도를 안 했으니 수염이 나 있었고 어딘가 뒹굴다가 하얀 먼지라도 묻었겠지 했다. 그런데, 그런데... 하얀 수염이었다! 흰머리도 아니고 무려 흰 수염! 머리 속이 하얗게 변색되는 기분. 만화 같았으면 온몸이 하얗게 변하면서 쨍강 하고 깨져버렸을지도 모른다. 흰 수염이라니, 흰 수염이라니~!

2. 말 달리자

상황 모면을 위한 말, 말, 말. 말들. 재빠르게 비집고 나오는데 있어서 어느 누구도 따르지 못할 만큼 출중한 말들. 그 말들을 모는데 아주 뛰어난 기수들이 많다. 다시 안 볼 것도 아니면서 그저 골인 지점만 후딱 지나치면 된다는 생각을 어떻게 그리 쉽게 할 수 있을까?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는데 이모와 아기가 들어오더라. 과자를 사러 들어온 아기는 모르는 사람들의 친근함에 은근히 냉담하다. 예쁘다고 말을 걸어도 말똥말똥 쳐다보기만 하고 얼른 이모 뒤를 쫓는다. 그러다 편의점 주인아저씨가 한 마디. '내가 아이스크림 하나 줄까?' 아이는 잠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생각하는 듯싶더니 냉큼 '네'하고 대답하고서 아이스크림 냉동고 앞으로 가 아저씨를 쳐다본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손에 쥐게 된 아이는 이모의 '고맙습니다, 인사해야지'라는 말에 우렁차고 가냘픈 톤으로 응답한다. '다아~' 앞대가리 다 떼어먹고 맨 뒤 '다'만 씩씩하게 내뱉는다. 아이 나이로 봐선 그게 최선이다. 그리고 솔직하다.

3. 꿈틀

며칠 전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꿈을 꿨다. 아침에 잠에서 깬 후 일어나기 싫어 5분쯤 꿈틀거리다 그 잠깐 사이 꾼 꿈이었다. 하루 종일 내 게으름을 얼마나 탓했던지. 밖에 나와서도 집에 전화해보고 싶었지만 함부로 할 수도 없었다. 혹시나 내 전화를 받으려고 일어나다 넘어지시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고.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날 따라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많이 하셨다. 요즘 핸드폰으로 내게 연락하는데 재미 드셨거든. 핸드폰에 '엄마'라고 뜨면 화들짝 놀라서 받는다. 그러면 '오늘 야구 어디서 하냐?' 저녁 때 즘엔 다시 연락하셔서 '오늘도 졌어야.'(요즘은 정말 마냥 진다. 그런데도 꼴찌가 아닌 걸 보니 정말 정말 마냥 마냥 지는 팀들도 있다는 거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충격, 혐오, 조바심으로 현실 도피라도 하고 싶은 한 주였다. 저 제목들을 보라. 다들 글 내용과 아무 상관도 없다...

by 지킬 | 2008/06/27 12:07 | 내 안의 소리들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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