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아래 기억들

우리 집 안방은 한쪽 벽을 제외하곤 모두 가구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쪽은 가장 큰 이불장, 그 맞은편엔 화장대와 삼층장, 그 사이 벽엔 문갑과 TV. 모두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쓰던 것들로 지금 실제 사용 중인 건 이불장 하나뿐이다.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했을 때 높은 곳에 오르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이 방의 가구들 위쪽도 청소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고작 2~3개월짜리 새끼고양이가 뛰어오르긴 너무 높단 생각에 굳이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 설마 저 높이를 뛰어 올라가겠어. 그리고 그 예상은 한 달도 안 돼서 보기 좋게 빗나갔다.

불을 끄고 방에 누웠는데 문갑 위로 고양이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쪽을 돌아보니 녀석은 문갑 위에서 삼층장 위를 쳐다보더라. 어둠 속 검은 고양이의 자태에 불과했지만, 의도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자세다. 에이 설마…! 의구심이 완전히 자태를 갖추기도 전에 점프. 그에 반응해 내 몸도 자동으로 벌떡. 불을 켜고 삼층장 위를 쳐다봤다. 그때 그 고양이의 표정, 마치 '나 잘했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천진난만하고 득의양양한 표정에 차마 화는 못 내겠고 조용히 욕을 하면서 의자를 가져다 올라선 후 끄집어 내린다. 덤으로 삼층장 위 먼지도 한 움큼. 발을 싹싹 닦아주고 도약대로 사용된 삼층장 쪽 문갑 위에 여름에 쓰던 선풍기를 올려놓은 후 비로소 안심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하나. 설마 이불장 위로 뛰진 않겠지? 거긴 문갑에서 좀 더 떨어져 있고 높이도 더 높은데? 어둠 속에서 문갑과 이불장, 이불장과 문갑을 몇 번이나 쳐다보다가, '에이 저건 절대 안 돼.'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눈을 감는다.

그 결론은 옳긴 했다. 잠이 들락말락 하는데 문갑 한쪽에서 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불장 쪽 문갑이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안 떠지는 눈을 어떻게든 떠보려는데 무언가 심하게 긁는 소리에 눈이 번쩍 떠진다. 응?! 그 순간 내가 본 모습은…. 고양이가 이불장을 수직으로 달려 올라가는... 듯했지만 곧 중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밑으로 툭. 점프했지만 목표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앞발 뒷발로 부지런히 애매한 이불장만 긁어대다가 결국엔 떨어진 거다. 내가 눈을 떴을 땐 열심히 긁어대던 그 순간이 포착된 거고. 이번엔 아낌없이 화를 퍼부었다. 180~190cm 높이에서 떨어지는 거라 연이은 시도를 막기 위해 하면 안 된다는 상황 인식 정도는 해줄 필요를 느꼈거든(글은 이렇게 썼지만, 진실은 그냥 화가 치밀어 올랐다는 거... 흠). 그 후로 다행히 더 이상의 시도는 없었다. 한쪽은 완벽하게 막혔고 다른 한쪽은 자기 능력 밖이라는 걸 깨달은 듯하다. 그나저나 잠 좀 자자, 이눔의 자식아.

안방 가구로 인한 소동은 이쯤으로 끝난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가구를 가구로만 보는 사람으로서 내 생각에 불과했다. 녀석은 그다음 날부터 목표 지점을 바꿨다.

푹푹. 푹푹푹.

불만 끄고 이불을 덮으면 들려오는 소리. 고양이가 어딘가를 후벼파는 소리다. 소리가 날 때마다 몸을 일으켜서 녀석을 쳐다보면 녀석도 행동을 멈추고 나를 쳐다본다. 물론 불을 끈 상태라 검은 실루엣만 보인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어디를 후벼 파는지는 안다. 이불장 밑 좁은 틈과 그보다 조금은 넓어서 앞발이 쑥 들어갈 정도는 되는 문갑 아래다. 문제는 '왜'였다. 그 안에는 먼지뿐인데(역시 먼지를 먼지로만 봤다). 이유를 알게 된 건 아주 우연히 현장을 목격하고 나서였다. 내가 그다지 강하게 제지를 하지 않자 녀석은 조금씩 대담해졌다. 처음엔 불을 끄고 한참이 지나서 하던 행동을 내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눕자마자 하기 시작했고 그날은 좀 더 대담해져서 불을 끔과 동시에 행동을 개시하려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마침 핸드폰을 식탁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나 엉거주춤 앉던 자세에서 다시 일어나 불을 켜게 됐다. 그리고 이미 행동에 들어갔다 깜짝 놀란 녀석이 나를 돌아봤고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잠깐의 정적. 눈 한두 번 깜빡일 시간이 지났을까?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정확히는 나는 고양이를 향해, 고양이는 나를 지나쳐야만 갈 수 있는 문을 향해 돌진했다. 내가 더 빨랐다. 고양이를 낚아챈 나는 바로 두 번째 행동에 들어섰다. 이번에는 녀석의 혀가 더 빨랐지만 다행히 헛손질(헛혀질?)을 한 덕에 녀석 입 옆에 붙어있던 먼지 한 움큼을 떼어낼 수 있었다.

야 이 개자식아, 바닥에 있는 건 다 입으로 들어가게 니가 개새끼냐, 이 개눔의 자식아!
(멍멍이를 싫어하진 않는다. 다만 욕은 개가 들어가야 제맛이라...)

먼지를 빼앗은 때가 밤 11시쯤. 씩씩거리며 청소를 시작한다. 문갑을 끄집어 당겨서 최소 열 살은 됐을 먼지들에 종말을 고했고, 옴짝달싹하지 않는 이불장 밑은 30cm 자에 물티슈를 감은 다음 최대한 닦아낸다. 그동안 내 입은 쉴 새 없이 욕과 한숨을 뱉어내고, 이 사달이 왜 일어나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는 고양이는 발악 중인 내가 여러모로 신기한지 구경꾼 노릇을 충실히 수행 중이다. 개눔의 자식. 청소를 끝내고 다시 누웠을 땐 날을 넘겨 새벽 한 시쯤. 그렇게 잠을 청하는데 다시 소리가 들려온다. 푹푹푹. 그래, 파라. 절대 먼지는 못 캐낼 거다. 있다 해도 난 모르겠다. 적어도 오늘은. 잠 좀 자자. 제발.

꼬리말) 며칠 전 삼층장 위 놓여있던 물건들과 먼지를 다 제거했다. 그 위에 수건을 깔고 나사로 고정한 후 몸을 숨길 수 있는 방석집 하나를 올려줬다. 인기 폭발이긴 한데…. 관련된 얘기는 나중에 때 되면 하는 걸로. 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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