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나이트 라이즈, 올바른 세상이란... 영화...또다른 현실

장사를 하다 보니 참 다양한 동전들을 접하게 된다. 심하게 변색된 동전들은 허다하고 중딩 고딩들이 뒷자리에서 열심히 구멍 뚫은 동전들,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살짝 구부러진 동전들, 생채기가 심한 동전들. 무심결에 거스름돈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이런 동전들은 모아서 은행으로 가지고 간다. 내가 다른 가게에서 저런 동전들로 거스름돈을 받으면 기분이 나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싫으면 남들도 싫다. 이게 일을 시작하면서 세운 단 하나의 기준이었다. 헌데 기분이 좋든 싫든 저런 녀석들도 분명 동전은 동전이다. 하지만 더 이상 동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한쪽 면이 완전히 매끈하게 된 동전이 그것이다. 우연에 의해선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누군가 고의로 한쪽 면을 갈아버린 것들이다. 다른 더러운 동전들은 심드렁한 알바들에 의해 거스름돈으로 나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쪽이 사라진 동전은 그런 알바들조차도 손님에게 주지 않고 따로 빼놓는다. 누가 생각해도 동전이라고 하기엔 부적절해서다.

전편인 <다크나이트>에선 진실이 감춰지고 왜곡된다. 알프레드는 브루스에 대한 걱정으로 레이첼의 선택을 브루스에게 알리지 않았고, 배트맨과 고든은 고담시의 혼돈을 우려해 조커에 의해 망가진 하비 덴트의 실상을 숨긴다. 그 결과 고담시는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받들었고 하비 덴트 특별법이 발효돼 범죄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가혹한 응징이 이루어진다. 범죄는 줄었고 거물급 악당도 사라졌다. 가면을 뒤집어 쓴 채 법의 테두리 밖에서 날뛰는, 근본도 모르는 배트맨 대신 세상 누구에게나 당당할 수 있는 지방 검사 하비 덴트가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배트맨은 불이익을 감수하고서 스스로 누명을 썼고 브루스 웨인이란 가면 안 쓴 당당한 자아로 살면 되니 문제 될 거 없지 않은가?

'너와 나는 죽도록 싸우기만 할 거야.' 전편에서 혼돈을 대표하는 조커가 질서를 수호하려는 배트맨에게 한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질서와 혼돈은 내내 충돌하면서 서로 긍정적인 방향을 찾아나가야 한다.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혼돈이 사라지고 질서가 세워지면 세상이 더 좋아질 거 같지만 그건 아니다. 질서는 불안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의미와 통하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 중 하나인 분노를 안 좋은 것으로만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진다. 변화가 없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현상 유지 또한 되지 않는다. 단지 썩을 뿐. 고담시는 그렇게 되어갔다. 하비 덴트 특별법을 바탕으로 한 응징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모든 범죄자에게 낙인을 찍음으로써 새 출발의 기회를 막았다. 셀리나처럼 새 삶을 살고 싶어도 고담시에선 도리가 없다. 잘못된 현상을 향한 분노는 드러내지 말아야 할 부정적 에너지로만 치부되어 세상에 기여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 되었다. 배트맨은 화이트나이트가 아닌 다크나이트를 선택하면서 고담시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했지만 사람들은 그러질 못했다. 그럴 수 없었다란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곳, 그 때에 베인이 등장한다.

조커와 배트맨의 대결이 혼돈과 질서의 대결이었다면 베인과 배트맨은 절망과 희망의 대결이다. 베인을 비롯한 어둠의 사도들이 불사조와 같은 세상의 재건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바탕은 사람들에 대한 절망이나 다름없다. 모든 사람들은 타락했고 그 때마다 세상을 파괴하겠다. 다시 세워진 세상에서 사람들이 타락하면 또 파괴하고 또 파괴하고. 신념과 희망을 착각하진 말자. 그들은 파괴와 재건이란 신념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이지 결코 사람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진 않았다. 이에 반해 배트맨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리 극한 상황이라도 사람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우린 왜 자꾸 떨어질까?'란 질문에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기 위해'라는 답까지. 시커먼 취향에 어울리지 않게 징그러울 만큼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솔직히 이 희망 또한 너무 강력해서 신념으로 보이긴 한다). 가면을 벗은 브루스가 레이첼을 잃고 절망에 빠진 것에 비하면 또 너무 대조적이고. 어쨌든 베인과 배트맨은 죽어라 쌈질을 해댄다. 변하지 않는 세상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절망에 맞서 다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싸우는 셈이다. 싸움은 쉽지 않다. 세상을 바꾸는 건 은행 가서 동전 바꾸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어려운 거다.

처음 동전 얘기로 돌아가 보자. 한쪽이 심하게 파손된 동전이 있다. 사람들은 고민에 빠진다. 이 동전을 물건 살 때 써도 되나? 사람과 세상도 마찬가지다. 혼돈과 질서란 두 속성 중 하나가 심하게 억압된다면 그게 과연 제대로 된 사람이고 세상일까? 동전은 은행 가서 바꾸면 되지만 사람과 세상은 그 자체를 바꿀 수 없고 변화시켜야 한다. 그 과정은 어마어마한 고통과 인내와 실패를 동반할지도 모른다. 절망에 맞닥뜨려 그대로 무너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혹은 사람들은 균형이 잡혀있을까, 아니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있을까? 지나치게 치우쳤다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배트맨의 말마따나 그걸 바로잡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먹고 살기 바빠 쉴 틈도 없어서. 젠장.

원제 : the Dark Knight Rises(2012년)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 크리스찬 베일(브루스 웨인/배트맨), 게리 올드만(짐 고든), 톰 하디(베인), 조셉 고든-레빗(존 블레이크), 앤 헤서웨이(셀리나 카일), 마이클 케인(알프레드), 마리옹 꼬띠아르(미란다 테이트), 모건 프리먼(루시어스 폭스), 벤 멘델손(대거트), 매튜 모딘, 킬리언 머피, 리암 니슨, 네스터 카보넬


꼬리말) 극장가서 영화 본 건 거의 4년만이다. 영화 보고 글을 쓰는 건 그거보다 조금 낫다. 확실히 꾸준히 하지 않으면 감이 떨어진다. 쓰고 싶은 얘기는 많았는데 반쯤만 적은 듯하다. 정치 관련 얘기도 하고 싶었고 진실과 믿음에 대해서도 적어보고 싶었지만 다 뺐다. 정리도 안 되고 결론도 안 내려지고... 결과물인 이 글도 딱히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배트맨이 나오는 영화인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젠 언제 또 영화 보러 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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