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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잃다

 
오랜만에 우리 집 곰돌이 얘기 좀 해야겠다. 예전부터 이 블로그에 드나드셨던 분이라면 우리 집에 수줍음 많은 곰돌이 한 마리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실 거다. 보통 때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있다가도 특정 시간만 되면 우렁찬 사자후(곰 주제에...)를 내뿜어 나를 벌떡 일어나게 하는 힘을 지닌 존재. 첫 만남에 그 우렁찬 사자후에 어찌나 놀랐던지 심장이 벌렁거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그만 핸드폰 모닝콜에 밀려 자기 역할을 빼앗긴 뒤론 사자후를 내지를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던 자리는 빼앗기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렇게 1년(어쩌면 2년) 넘게 곰돌이는 '쳇'이라는 짧은 단어로 신세 한탄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편의점을 시작하고 잠이 부족해진 내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그 일이 있고나서 곰돌이를 다시 찾게 됐다. 건넌방에 있는 어머니까지 일어나게 만드는 그 우렁찬 사자후가 절실히 그리웠던 까닭이다. 곰돌이와 핸드폰의 앙상블이라면 아무리 내가 잠에 깊이 빠졌더라도 일어나지 않고서는 못 배길 터였다. 허나 다음 날 새벽. 곰돌이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발악하는 핸드폰을 진정시키고서 곰돌이를 이리저리 만지기 시작했다. 머리도 쓰다듬어 보고(알람 스위치가 머리에 달렸다), 등을 토닥거리기도 했다(알람 바늘 조절은 뒤쪽에서 한다). 그렇게 몇 번을 해 보고서 곰돌이를 조용히 제 자리에 놓아두었다. 다음 날 다시 시도해 보리라. 하지만 다음 날에도 곰돌이는 침묵을 지켰다. 믿기 싫었지만 곰돌이가 목소리를 잃었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자 그 다음 문제가 나를 짓눌러 왔다. 그렇다면 이 곰돌이는 이제 무엇인가?

연말에 블로그를 결산하면서 놓친 것이 많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많은 것을 할 수 없게 됐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면서 어떤 것들은 되찾겠지만 어떤 것들은 영원히 내 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삶에 잠식되어 허우적대면서 내가 간직했던 많은 것들이 저 깊은 삶의 수렁 속으로 가라앉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 나는 무엇일까? 목소리를 잃은 곰돌이 알람시계처럼 삶의 장식물로 남겨져야 하는 걸까? 처음으로 직접 해 보는 장사가 어려울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려운 건 정작 다른 데 있었다.

by 지킬 | 2009/01/12 00:55 | 내 안의 소리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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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1/12 13:3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지킬 at 2009/01/19 00:05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그만큼 소홀해지죠. 안 그럴 거라 다짐해보지만 24시간이란 시간은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의 여유만 허용하더군요. 곰돌이는 멀뚱히 앉아서 배꼽시계만 열심히 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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