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나이트, 질서와 혼돈이 낳은 혼돈 영화...또다른 현실

집 바로 앞에 어린이집이 있다. 가끔 잠을 자고 일어나 좀비가 되고 싶다는 분위기를 온몸으로 내뿜고 있을 때 그 몽롱함을 파고드는 앳된 함성들이 들려온다. 그럼 난 정신을 추스르고 저 아래 창문 밖을 내려다본다. 그 곳에선 어린이집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있다. 세발자전거를 타는 아이, 미끄럼틀에서 노는 아이, 옹기종기 모여 뭔가를 만지작거리는 아이들... 참 각양각색의 아이들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다 선생님이 부른다. '자, 이쪽으로 모여요!' 시간 차이는 있지만 아이들은 하나 둘씩 모이고 때가 되면 모두가 선생님 앞에 선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타인과 함께 질서의 의미를 깨우쳐 가는 곳. 이 곳에 오기 전까지 아이들에게 질서란 별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질서를 모르는 존재, 그 존재를 혼돈의 존재라고 부른다면 과장이겠지? 허나 아이는 분명 질서보다 혼돈에 가깝다. 그러니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혼돈부터.

벌건 대낮. 은행이 털리는 중이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다. 다섯 쯤 되던 강도들은 은행을 다 털 무렵 한 명만 남고 모두 죽게 되는데, 죽은 자 대부분은 자기들끼리 쏴 죽이게 된다. 살아남은 한 남자에 의해 철저히 계획된 배신이었던 거다. 그렇게 첫 등장을 장식한 조커는 나중에 자기 입으로 자신을 혼돈이라 칭한다. 그런데 희한하다. 혼돈이라 하면 모든 게 갈팡질팡이어야 하는데 이 혼돈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다. 왜일까 싶어 살폈더니 조커에겐 한 가지 믿음이 있었다. 사람은 기회만 되면 상대를 배신하고 죽이기도 하는 둥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그 믿음이 혼돈을 자칭하는 조커에게 일정한 지향점을 준 셈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믿음을 바탕으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서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려 한다.

여기에 제동을 거는 존재가 있다. 알다시피 배트맨이다. 그는 범죄자들을 소탕해 도시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세상을 살아가는 힘까지 주고 싶어 한다. 그것은 곧 배트맨의 믿음과 통한다. 사람은 조그만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여지만 있다면, 앞길을 비춰줄 한 줄기 빛만 있다면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끌어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그 믿음이 브루스 웨인으로 하여금 법의 테두리 밖에서라도 배트맨 가면을 둘러쓰고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준다 하겠다.

이제 혼돈과 질서가 다 갖추어졌다. 조커와 배트맨은 서로 완벽히 다른 지점에 선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누구보다 강력한 믿음과 의지를 지녔다는 점에서 둘은 같은 지점에 선다. 서로 다르면서도 같은 존재. 떠오르는 게 있지 않나? 맞다, 동전이다. 동전의 앞과 뒤는 항상 반대쪽을 향한 채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둘은 동전이란 하나의 물체에 묶인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배트맨과 조커는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는데 동전의 앞과 뒤가 싸웠다는 얘기 들어봤나? 아니, 그보다 어느 한 쪽이 이겨서 다른 한 쪽을 말살시킨다는 게 의미가 있는 일인가? 만약 그랬다간 동전으로서 가치가 사라질 판인데 그건 의미가 있을 수 없다. 혼돈과 질서는 함께 있어야만 완벽해지고 서로가 상대방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이 그렇듯이 말이다. 영화도 그걸 모르진 않아 보인다. 이유야 어떻든 조커와 배트맨은 상대방을 죽이지 못하고 조커는 직접 이렇게 말하기까지 한다. 너와 나는 이렇게 끝까지 싸우기만 할 거라고. 그런데 그걸로 끝일까?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하는 승패 없는 이 뻔하고 지루한 싸움판, 그게 다일까?

그게 다라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허나 불행하게도 끝이 아니다. 혼돈과 질서의 쌈질 와중에 아주 별난 게 하나 탄생하고 만다. 지방 검사 하비 덴트는 정의감 넘치고 의지가 강한 인물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강력하게 정의를 추구하던 그가 조커와 배트맨이 펼쳐놓은 난장에 휩쓸려 투페이스로 타락하게 된다. 양쪽 모두 동전의 앞면만 그려져 있던 하비의 동전은 질서를 세우겠다는 그의 강력한 의지를 상징했지만, 한쪽에 흠이 나버린 투페이스의 동전에는 의지 따위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 동전에는 모든 걸 동전 던지기란 운에 내맡긴 채 자신만의 질서와 혼돈을 강요하는 또 하나의 혼돈, 어쩌면 진정한 혼돈이 자리 잡게 된다.

<다크나이트>는 조커와 배트맨으로 대변되는 혼돈과 질서를 양쪽에 놓고 서로가 진실이라 믿는 바를 향해 뚝심 있게 나아가게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부산물로 혼돈보다 더욱 혼란스럽고 질서보다 훨씬 숨통을 조여 오는 투페이스를 떨어뜨린다. 하지만 조커와 배트맨이 믿었던 것들이 정말 진실이었을까? 배에 탔던 죄수들은 일반인들보다 먼저 폭탄을 내던졌고, 역시 사람의 한 명이던 브루스 웨인은 결코 분노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았다. 배트맨을 대신해 사회의 수호자가 될 거라 생각했던 하비 덴트는 투페이스로 변질됐고, 사람들은 조커의 조종대로 누군가를 죽이려 눈을 희번덕거렸다. 시스템을 파괴하려던 조커와 시스템을 수호하려던 배트맨은 성공과 실패를 절반씩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마지막, 영화는 화이트나이트는 타락하고 오직 다크나이트만이 유효한 세상임을 선포한다. 그 비극의 마지막에서 영화는 내심 이런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들에게 진실이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진실을 가르쳐야 하나? 그러기에 앞서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진실이란 게 있기는 한 건가? 사회비판적이었던 팀 버튼의 배트맨과 달리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이 정치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원제 : the Dark Knight(2008년)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 크리스찬 베일(브루스 웨인/배트맨), 히스 레져(조커), 아론 에크하르트(하비 덴트/투페이스), 매기 길렌할(레이첼), 게리 올드만(고든), 마이클 케인(알프레드), 모건 프리먼(루시우스 폭스), 모니크 커넌(라미레즈 형사), 에릭 로버츠(마로니), 친 한(라우), 나단 갬블(제임스 고든), 윌리엄 피슈너, 네스터 카보넬, 킬리언 머피, 멜린다 맥그로우(고든 부인), 론 딘, 리치 코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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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8/09/02 13:1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지킬 2008/09/03 12:28 #

    볼륨 올리고 혼자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신경을 긁는 듯한 음악이 아주 예사롭지 않거든요.
  • 수수꽃다리 2008/09/07 21:31 # 답글

    저도 음악이 꽤 신경쓰이더라고요... 그래서 중간에 약간 지루했던 걸 견딘 듯... ㅋ
  • 지킬 2008/09/08 11:43 #

    처음엔 별 신경을 안 썼는데 어느 순간부터 음악이 분위기를 휘어잡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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