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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 그래, 우연은 없다

 
지나친 무관심도 문제지만 지나친 애정도 문제가 되곤 한다. 그것은 종종 집착과 욕심으로 연결돼 대상을 망치곤 하기 때문이다. 전에도 한 번 얘기한 적이 있지만 내 어렸을 때 어머니는 나와 함께 책상머리에 앉아 공부를 시키곤 하셨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직전부터 그러기 시작했으니 그것이 내겐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그걸 내 담임 선생님이 알아차리셨다. 보통 때 내 행동과 학부모 상담할 때 어머니의 말씀을 통해서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신 선생님은 어머니께 충고를 하셨다. 아이를 놓아주라고. 그래도 이 아이는 혼자 잘 해 나갈 거라고. 어머니는 그렇게 하셨고 난 선생님 말씀대로 나름 잘 헤쳐 나갔다. 우연? 그런 건 없었다. 원래 혼자 이것저것 해 보면서 집중하는 게 내 생활 습관이었고, 그걸 눈치 채신 선생님이 그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필연의 결과였다.

과체중으로 계단을 오르기도 벅차고 툭 튀어나온 배와 뒤룩뒤룩 엉덩이 때문에 식당 테이블 사이를 지나가기도 쉽지 않은 배불뚝이 팬더 포. 쿵푸에 대한 동경으로 새로 뽑힐 용의 전사를 보러 갔다가 그만 엉겁결에, 그것도 기가 막힌 타이밍에 용의 전사를 가리키는 우그웨이 대사부의 손가락 앞에 묵직하게 쿵 떨어진다. 그렇게 포는 뜬금없이 배불뚝이 용의 전사가 되고 만다. 동시에 그는 도장의 불청객이 되어 버린다. 우그웨이 대사부 빼고는 아무도 그를 용의 전사로 인정하기 않기 때문이다. 그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포는 타고난 넉살과 맷집으로 나름 용을 쓴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시푸 사부의 냉대와 불신뿐이다. 다리 찢기 하나 제대로 못하는 불뚝 팬더는 용의 전사일 수 없다!

운명. 그런 게 정말로 있을까? 포가 대사부 손가락 앞에 운 좋게 뚱(!) 떨어진 건 정말 용의 전사로 타고난 운명이었을까? 모르겠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보다 내 주의를 끄는 건 '넌 화가 나면 마구 먹지 않느냐'라고 말한 우그웨이 대사부의 관심과 뒷일을 맡기고 떠나는 걸 가능케 한 시푸를 향한 믿음이다. 그 관심과 믿음은 모든 걸 바꾸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밑거름이 된다. 운명? 우연은 없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설사 타고난 운명이 있다 해도 상관없다. 복숭아 심은 곳에서 복숭아 자라는 건 바꿀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또한 상관없다. 운명도 다듬고 매만져야만 일굴 수 있으며, 복숭아라고 다 같은 복숭아도 아니니까. 이제, 정말, 우연은 없다. 그건 중요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서 이뤄낼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타고난 운명도 게으름 앞에선 시간만 좀먹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쿵푸팬더>는 운명을 바탕에 깔지만 그 바탕은 위에 놓인 다른 것들로 온통 가려진다. 그것들은 꿈을 키워가는 것, 대상을 부정하지 않을 것, 대상을 올바로 파악할 것, 믿음을 가질 것, 틀에 속박되지 말 것 등이다. 투시력을 발휘해 운명을 움켜쥐지 말고 눈에 힘을 뺀 채 겉에 놓인 가치들을 살피자. 눈에 힘을 잔뜩 주다가 눈이 아려 눈물이 고이는 것보단 조용히 살피며 눈가를 촉촉하게 적셔오는 눈물과 미소가 우리에겐 훨씬 이롭다. 그 눈물과 미소는 겉으로 드러난 것이긴 해도 내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관심과 믿음 또한 우리 내부에서부터 시작되는 것들임은 두 말 할 필요 없으리라.


원제 : Kung Fu Panda(2008년)
감독 : 마크 오스본, 존 스티븐슨
출연 : 잭 블랙(포), 더스틴 호프만(시푸), 안젤리나 졸리(타이그리스), 이안 맥셰인(타이룽), 성룡(몽키), 루시 리우(바이퍼), 데이빗 크로스(크레인), 세스 로건(맨티스), 랜달 덕 김(우그웨이), 제임스 홍(포 아버지), 마이클 클락 덩컨, 댄 포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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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킬 | 2008/06/22 14:27 | 영화...또다른 현실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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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마른미역 at 2008/06/22 18:44
눈에 힘준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닐테니까요. ^^;
Commented by 지킬 at 2008/06/23 10:46
모피어스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넌 2mb를 배드섹터화 할 수 있는 유일한 자다'라고 말해줄지 또 압니까?^^;
Commented by sesism at 2008/06/23 13:49
저는 포가 타이렁을 엉덩이로 깔아뭉개는 장면이 제일 좋아요. 서울아트시네마나 각종 영화제를 제외하고 상영관 안의 관객들이 한 마음으로 보면서 박수치는 영화는 이게 처음인 것 같아요. 낯선 느낌.
Commented by 지킬 at 2008/06/24 11:30
저는 배로 타이렁을 하늘 높이 쳐 올리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즐겁게 영화를 보다 나왔죠. 옆 자리에 있던 처음 보는 아이들도 그랬던 듯하고.
Commented by 히치하이커 at 2008/06/25 19:51
그니까 제가 가진 불만은 , 왜 열심히 노력한 타이렁에겐 그런 믿음을 주지 않았느냐 하는 거였어요.

좌우간 잭블랙은 싱크로율 300빠센트더군요. 킬킬.
Commented by 지킬 at 2008/06/26 10:54
이 애니는 거기까지 그리 깊게 생각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냥 '야심 때문에'라는 우그웨이의 말과 타이렁의 눈빛으로 마무리 짓는 선이랄까요.
아주 쟁쟁한 목소리들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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