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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 상처 받은 심장을 지닌 사람들

 
사람의 가슴을 들여다보자. 가장 바깥쪽에 살이 있고, 그 안에 근육이 뼈를 둘러싸고 있다. 혈관 안으론 피와 영양분이 흘러 다니며 허파는 공기를, 심장은 혈액을 순환시키기 위해 쉴 틈 없이 움직인다. 그것들은 단백질과 지방과 수분 같은 것들로 구성된 조직들이자 맡은 바 역할이 있는 기능체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기능 외에도 또 다른 역할을 가슴에, 특히 심장에 부여해왔다. 감성과 양심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성을 도맡은 뇌가 사람을 다른 존재와 구분시키는 주요 잣대가 됐다면, 심장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핵심으로 자리 잡아 왔다. 아기를 보듬어 안는 엄마와 아빠의 가슴, 생명의 근원인 피를 순환시키는 심장, 온몸의 감각과 정신을 일깨우는 심장의 두근거림. 가슴은, 심장은 그렇게 우리 사람들을 대표해왔다.

토니 스타크는 군수업체의 천재 개발자이자 CEO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심장을 지녔지만 그는 무기를 만들어낸다. 그의 심장은 '나' 또는 '우리'만 지키고 잘 살면 되는 그런 심장이다. 그런데 어느 날, 토니는 심장에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 신무기 홍보차 방문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게릴라들에게 납치를 당하는 도중 그만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는다. 심장에 박힌 조그만 파편 조각들을 제어하기 위해 가슴에 이상한 전자석 같은 걸 달고 다녀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게릴라들의 무기 개발 협박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는 그 곳에서 자신이 만든 무기가 자국의 군인들을, 힘없는 사람들을 목표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토니의 심장은 다시 한 번 상처를 입는다. 처음이 물리적 상처였다면 뒤의 것은 심리적 상처이자 양심의 상처다. 그리고 그 상처가 토니에게 지금까지 왔던 길과 다른 길을 열어준다.

사람은 참 묘하다. 꼭 상처를 크게 한 번 받아야 변화의 길을 찾거든. 토니의 상처 받은 심장은 '나'를 반성하고 '우리'가 아닌 '그들'까지 돌아보게 만든다. 변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길을 모색하자 신개념 에너지원이란 형태로 새로운 가능성까지 열린다. 그 가능성은 토니의 돈과 재주를 발판으로 엄청난 현실로 거듭난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돈이다. 돈은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사람들을 무수히 많이 찍어내는 원동력이고, 가슴의 따뜻함을 시원하게 냉각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차가움을 지녔기 때문이다. 심지어 변화의 길을 찾았던 사람들마저도 그 서늘함에 따뜻한 기운을 빼앗기고 또 다시 '나'만 보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이제 토니는 그 돈과, 그 돈에 양심을 판 사람과 싸워야 한다. 그것도 상처 받은 심장이 새로운 길을 찾던, 처음의 그 절박했던 심정으로 말이다.

<아이언맨>은 피해의식에 휩싸인 영웅을 그려내지 않는다.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영웅도 아니고, 고양이에 몰리는 쥐 꼴처럼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된 영웅도 아니며, 정의 그 자체인 영웅은 더더욱 아니다. 군수업체의 CEO였으며 핵심 두뇌였던 토니는 지금과 같은 세상을 만들어낸데 책임이 있는 가해자였다. 그랬던 그가 피해자의 입장에 서게 되면서 영화는 또 다른 형태의 영웅 얘기를 펼쳐낸다. 그 영웅은 자기 위안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심각함과 가벼움이 뒤섞여 있으며, 은밀함과 자기 과시 사이에서 갈등한다. 토니가 미국 군수업체 소속이고 재력가라고 해서 그가 보여준 단면이 별나라 얘기라 생각해선 곤란하다. 이제껏 시대 변화에 발맞춰 등장했던 히어로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언맨> 역시 그 시대에 속한 보통 사람들의 일면을 간직한다. 멀리 볼 거 없다. 미국 영화라고 해서 미국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그냥 대한민국 내부를 조금 살펴보면 된다. 그것도 귀찮으면 그냥 블로그를 돌아다녀도 된다. 그 곳엔 사회 현상과 맞물려 위에 적어놓은 갈등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원제 : Iron Man(2008년)
감독 : 존 파브로
출연 : 로버트 다우니 Jr.(토니 스타크), 제프 브리지스(오바디아), 기네스 펠트로우(페퍼 포츠), 테렌스 하워드(로디), 레슬리 빕(크리스틴), 숀 터브(잉센), 패런 타이르, 클락 그렉

by 지킬 | 2008/06/15 01:30 | 영화...또다른 현실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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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8/06/15 12:05

제목 : MARVEL MOVIES : 아이언 맨
-영화의 주요 세일즈 포인트는 속도감 넘치는 액션과 현란한 메카닉의 향연이지만 사실 이 영화의 핵심은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성격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사건들을 펼쳐보이는 데 있다. 엄청난 유명인사에 집안도 부자이고 십대에 대학을 졸업할 정도로 천재인 데다 고철 덩어리만 갖고도 전장의 개념을 확 뒤엎을 만한 신병기를 뚝딱 만들어내는 기적의 손재주까지 갖고 있으니 이쯤 되면 마블 유니버스뿐만 아니라 슈퍼히어로계 전반을 봐도 찾아보기 힘든 엄마친구아......more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8/06/15 12:05
그 위태위태한 자기모순이 주인공의 가장 큰 매력인 동시에 약점이라 생각하는데 속편이 나온다면 그점에 대해서 어떤 답을 낼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지킬 at 2008/06/16 00:17
다른 영웅들도 자기모순에 빠져있긴 하지만 이 아저씨가 선보인 갈등처럼 속되고 친근한 경우는 없었던 거 같습니다. 예, 분명 매력은 매력입니다.
Commented by 사은 at 2008/06/20 05:51
영화를 통해서 속을 돌아보게 해주는 글이라 몇 번을 다시 읽었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역을 소화할 수 있었을까요?
Commented by 지킬 at 2008/06/20 11:28
어딘가 모르게 퇴폐적이고 제 멋대로인 인물이라면... 언뜻 죠니 뎁이 떠오르긴 하는데 그 아저씬 어째 말쑥한 현대물엔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라. 역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침 발라놨으니 다른 인물은 건드리기 쉽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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