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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놓치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 어찌나 정신없이 움직이면서 사람들을 상대했던지 저녁 7시쯤 되자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았다. 그러다보니 순간 넋을 놓았던 모양이다. 자기 방어가 풀렸었는지도 모른다. 눈앞으로 엄마에게 안긴 아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엄지를 자근자근 씹는 입술 너머로 하얀 앞니 두 개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조카애 입 안에 처음으로 이가 나기 시작했을 때. 연분홍 잇몸을 뚫고 조그만 하얀 이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어찌나 신기하고 예쁘던지. 아주 아주 자그마한, 사람이라는 증거. 아이 앞에서 연신 '이~', 또는 '아~'를 외쳐대면서 아이가 나를 따라하면 그 안에 자리 잡은 하얀 이를 살피곤 했었다. 그런 생각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중 아기와 내 눈이 딱 마주쳤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헌데 그 때는 아까도 말했듯이 자기 방어가 풀렸었는지 아기를 향해 먼저 웃음을 건넸다. 그냥 부드러운 표정으로 쳐다본 게 아니라 내 나름대로 활짝 웃었던 듯하니 내 스스로 그걸 깨달았다면 깜짝 놀랄 법도 했다. 하지만 내겐 놀랄 틈이 없었다. 아기가 내 웃음에 망설이지 않고 바로 화답을 했기 때문이다. 똘망 똘망 쳐다보던 눈이 반 이상 감기면서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간 것이다. 아이가 웃고 있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태안에선 기름이 유출됐고, 안양에선 초등학생 아이들이 당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당했고, 국회의원 선거는 투표율이 채 50%도 되지 않았다. 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기름으로 엉망이 된 서해안을 살리겠다고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나섰고, 정치권은 아이들의 피해를 막겠다고 미국의 메건 법과 비슷한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했으며, 언론은 '한나라-친박연대-자유선진'으로 연결되는 보수 세상이 국회에 펼쳐졌음을 알렸다. 누구나 알아챘겠지만 앞의 것은 어떤 현상이고 뒤의 것은 그 현상에 대한 대책 또는 관점이다. 그런데 그 대책이나 관점이 어째 불완전하다.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게 세상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불완전함은 조금 불만스럽다. 국민들의 자원 봉사 열기는 우리 아이들의 생존을 위협하며 서늘하게 도사리는 환경문제를 억눌렀다. 처벌 강화와 기존 범죄자에 의한 범죄 예방이 주 내용이 될 듯한 법 제정도 각종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의 복지 문제를 눌러 앉힐 가능성이 크다. 보수 성향으로 돌아선 국회만 주목했다간 비록 50%도 안 되는 투표율이긴 했으나 그 이면에 깔린 20대의 보수화·개인주의화 경향을 놓치기 쉽다. 눈앞에 굴러다니는 문제를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문제를 양산하는 근원을 살피는 것은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예전에도 그것이 일상이라도 된다는 듯 우리는 항상 문제의 뿌리를 외면한다.

'일상'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사실 사람들의 온정에 기대는 건 이 땅의 일상이 된지 오래다(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다). 금강산 댐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IMF가 터졌을 때도 그랬었다. 매년 반복되는 수해 때도 그랬고, 한 주에 한 번씩 방송되는 프로그램에서도 ARS 성금은 꾸준히 모아진다. 그런 것들이 정책과 시스템의 빈틈을 메워주는 것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올바르고 꾸준한 정책은 있었으며, 시스템은 갖추어지기라도 했을까? 어쩌면 언론을 통해 국민성을 고양시켜 온정을 촉발시키는 것이 꾸준한 정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대통합의 정치를 통해 경제 살리기에 전념할 때라 외치는 대한민국 정부는 되살려낸 경제를 바탕으로 그 어느 때보다 ARS 성금 불리기에 올인 할 계획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다. 모든 걸 경제로 연결하는 판국에 이 또한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현 정부를 향한 술주정 같은 비난에 불과하다고? 아니다. 비난은 맞지만 현 정부를 향했다는 말은 틀렸다.

사람들은 남을 향해 삿대질하는 데만 익숙하지 거울을 앞에 놓고 그 손가락 끝에 자신을 놓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이 참에 한 번 해 보자. 거울에 비친 너는 어떠냐고. 어떤가? 감수할 수 있겠는가? 내놓을 수 있겠는가? 솔직히 난 자신이 없다. 환경을 생각해 내 불편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지, 조금 어려운 형편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 내 이익을 얼마나 내놓을 수 있을지, 난 도무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 같은 이들이 지금 세상을 만드는 데 크게 한 몫을 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실망할 줄만 알고 나눌 줄도, 분노할 줄도 모르는 20대가 많다면 그건 상당 부분 앞 세대의 실책이다. 보고 배운 게 그 뿐인데 그들이 무얼 어쩌겠는가. 2008년 현재의 세상을 만들어낸 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 세상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자기는 아무 상관없다고 여기는 게, 자기는 피해자라 여기는 게 우리들이다. '잘 살아보세'라고 외치며 앞으로 내달리려고만 하는 정부와 '잘 살아보세'라고 부르짖으며 눈을 감은 채 정부가 마련해놓은 쾌속 열차에 어떻게든 한 자리 차지하려고 하는 우리들. 도토리 키 재기 하면 누가 더 클까?

사람들은 쉽사리 본질을 놓친다. 몰라서 그러기도 하지만 그게 더 속 편하기 때문에도 그렇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서 그것을 바로 잡는다는 건 보통 수고스러운 게 아닌데다가 자칫 나에게도 어떤 피해가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기를 좋아하는 건 세상에 찌든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진절머리 나는 경험을 해서다(원래 아이를 좋아하기도 했다). 사람에 대한 실망은 자연스럽게 내 시선을 순수함에 고정시켰고 그 시선이 찾아낸 대상은 아직 세상을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난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걸 알았고 그 해소를 위해선 사람을 만나야만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아이를 보고 웃고 아이의 웃음에 기뻐하는 것은 단지 한 순간의 해결책일 뿐이다. 내 문제의 본질은 관계를 두려워한다는 것, 그 해결은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 해결을 위해선 본질을 발견할 때 이상의 큰 어려움과 부딪쳐야만 한다. 하지만 그토록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하기 전에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게 먼저여야 한다. 그래야만 더욱 확실한 대책이 나오기 마련이다. 지금처럼 모든 길이 경제로 통해선 곤란하다. 경제 살리기가 우선이 될 수는 있으나 경제 살리기가 모든 게 될 수는 없다. 그랬다간 아주 많은 것들을 돌이키지 못하게 될 것이다.

by 지킬 | 2008/04/13 19:10 | 내 안의 소리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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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비타민 at 2008/04/14 01:41
저는 이제 더이상 본질이 뭔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 본질이라는게 있기나 한건지... 요즘은 워낙 급변하는 세상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8/04/14 12:37
입을 다물고 시선을 거둔다는 것은 적극 동조하는 것보다 오히려 비겁함 하나 더 포함되어 있을 듯 해서 사실 거울 보기가 겁이 나요.
자신이 없거든요.
Commented by 지킬 at 2008/04/15 01:26
비타민/ 둥글 둥글 살다 보니 놓치고 사는 것들이 많아졌어요. 조금 까칠하고 모나게 살아간다면 어떤 핵심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을 듯.

暗雲姬/ 비겁함 하나 더 포함이라... 이거 정말 겁 나는 얘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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