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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언젠가 길거리를 지나가는 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적이 있었다. 분홍색, 연두색 등으로 부분 염색을 해서 잔뜩 멋을 부렸고 목줄에 이끌려 그 많은 사람들 틈 사이를 통통 튀듯이 걷는 걸음. 자신감, 편안함, 도도함...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 정말 행복하게 살아가는구나'라는 분위기가 절로 풍겨지는 자태랄까. 가끔씩 누군가, 또는 무언가의 뒷모습은 저렇듯 살아온 삶을, 과정을 드러낼 때가 있다. 내 경우는 특히 힘겹게 걷고 계시는 할머니들의 뒷모습에서 왠지 허망하고 짠한 슬픔의 내음을 맡곤 하는데, 이건 나와 어머니의 관계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할지라도 분명 그 분들의 뒷모습은 강렬한 삶의 흔적을 담고 있다. 세월의 무게가 각인시킨 자국들이 할머니들의 뒷모습에 선명하게 새겨진 것이다.

이와는 달리 세월의 솜씨보단 뒷모습을 보여주는 존재의 감정이 그 솜씨를 드러낼 때도 있다. 얼마 전,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면서 아이를 업고 계단을 올라오는 아이 엄마와 지나친 적이 있었다. 아이는 채 돌도 지나지 않았고 어쩌면 제대로 기어 다니지도 못할 개월 수처럼 보였다. 그런데 아가는 뭐가 그리 궁금하고 보고 싶었던지 엄마 어깨 너머로 고개를 쭉 빼고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등에 고개를 파묻지도 않았고,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광경을 보는 것에 만족하지도 않았다. 따뜻한 엄마 등 너머 넓게 펼쳐지는 세상, 그게 궁금했던 것이리라. 모자(또는 모녀)와 지나친 뒤 고개를 돌려 그들의 뒷모습을 살폈다. 솔직히 엄마의 뒷모습에선 별 느낌을 받지 못했다. 여느 할머니들처럼 허리를 굽힌 자세에서도 힘들거나 허망한 분위기를 찾아내지 못한 것만으로도 그 느낌은 이미 강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생을 상쇄시켜 0으로 만들어버리는 애정. 그것만큼 뚜렷한 느낌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어쨌든 그 때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건 아이를 포대기로 둘러싸서 업은 젊은 여인의 뒷모습이 아닌 포대기에 싸여 자라목처럼 고개를 쭉 뽑아 올린 아이의 뒷모습이었다. 아이가 뒤척일수록 아이를 업은 엄마는 더 힘들다(더구나 젊은 엄마였음에도 아이를 업기 위해 사용한 건 포대기였다). 그러나 아이가 그런 걸 알 까닭이 없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 삶을 향한 아무 조건 없는 관심. 아이의 뒷모습은 오로지 저런 것들만 담아내고 있었다.

문득 저런 생각을 했었다. 할머니들의 뒷모습을 보고,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그러다 잊었다. 사는 게 뭔지 일에 시달리다 보면 머리 속 생각들은 쉬이 어딘가로 파묻힌다. 그러다 앞에 가던 개의 뒤꽁무니를 보고서야 파묻어두었던 생각들을 다시 파낼 수 있었다. 그리곤 궁금해졌다. 내 뒷모습은 어떨까? 무색무취일까? 세월이 내 뒤통수와 등판을 화폭으로 삼기 전에 무언가 내 나름대로 그려넣고 싶은데 그게 가능하기나 하련지. 용기를 내서 손거울을 들고 와 커다란 거울 앞에 섰다. 뒤돌아서서 손거울로 전신 거울에 비친 내 뒷모습을 살폈다. 오호라, 새치가 많구나(흰머리가 아니닷!). 그리고 또... 아무 느낌이 없다. 하긴 내가 내 뒷모습을 보고 무얼 느낀다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다. 나중에 전혀 몰랐던 사람과 함께 살면서 서로를 위해줄 수 있는 때가 온다면 그 때 그 사람한테서 들어봐야겠다. 그러나 그 때까지는... 심술꾸러기 미중년이 될 테다, 흥.

by 지킬 | 2008/03/15 13:01 | 내 안의 소리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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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3/15 14:1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unique at 2008/03/16 02:18
언젠가 다른 사람이 찍어준 내 뒷모습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데..잔뜩 긴장한 어깨처럼 보이더군요. 숨막힐 정도로...-_-....
어릴 적에 어깨가 좁고 쳐져 보이는 듯 해서 넓게 보이고 싶어 쫙쫙 펴고 다녀야지 하며 어깨를 펴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그런 습관이..뒷모습 사진을 보고 나니 생각이 많아지더라구요.
Commented by 지킬 at 2008/03/17 09:14
비공개/ '미'만 어떻게든 구워 삶는다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될 듯.

unique/ 제 친구 중 한 명도 어렸을 때 습관 때문에 한 동안 뒷모습이 구부정하게 보이던 녀석이 있었죠. 뒷모습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했던 삶의 일부를 간직하곤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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