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29일
2008년 2월 29일, 기다림
행운의 수자 7. 그렇다고 해서 7층에서 내다보는 창밖 풍경이 남다른 건 아니었다. 공사를 마치고 입주가 시작된 아파트 단지, 단지 앞 큰 도로와 차들, 희뿌연 하늘. 왼쪽을 힐끗 쳐다봤다. 전광판에 떠오른 글자는 여전히 '대기 중'. 기다린다는 행위가 설렐 때도 있었건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초조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었다. 가슴 속이 바짝 말라 마음에 떠도는 생각들이 메마른 먼지처럼 폴폴 날려도 전혀 이상할 거 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창밖으로 조그만 뽀얀 먼지들이 흩날렸다. 저 창밖 세상이 내 마음의 거울도 아닐 터인데 이 무슨 일이래. 사람이 초조하다 보면 어떤 현상을 자기 심리 상태와 연결지을 때가 있는데 아마 내가 그 상태인가 보다. 먼지가 날린다, 먼지가. 창가에 앉아있던 무심한 비둘기 두어 마리가 몸을 푸드덕 떨었다. 그걸 보다가 나도 모르게 몸을 후드득. 초조함을 떨쳐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흔들 수 있다. 흔들흔들.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다른 때와 달리 그 생각들은 한 글자 한 글자씩 내 머리 속을 흘러갔다. 글자 하나당 1초씩 걸리는 느낌. 세상에, 시간이 왜 이리 안 간다니! 화장실도 가 보고 다른 층에도 가 보고. 글자 하나하나와 매번 1:1로 사투를 벌이다 지쳐갈 때 즈음 전광판 글자가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그러나 시작했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도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작을 기다리는 초조함과 싸웠다면 이제는 끝을 기다리는 초조함과 버티기 한 판에 들어가야 했다. 역시 바라볼 곳은 창밖뿐이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까 조그맣게 흩날리던 게 먼지가 아니라 막 내리려 했던 눈이었던 모양이다. 거리는 어느 새 지저분해졌다. 눈이 쌓이지 않고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창밖에 있던 비둘기도 눈에 젖어 그 모양새가 추레해지고 있었다. 지금 내 마음도 저렇게 누더기가 되어 가는 중일 텐데.
의자에 앉아 조용히 발끝을 내려다본다. 까닥 까닥. 머리 속 생각부터 발끝 움직임까지 온몸이 기다림에서 비롯된 초조함을 내뿜는 중이었다. 크게 숨 한 번 들이쉬고 다시 초조함과 맞서 보려 할 즈음, 수술실에서 녹색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나오셨다. 어머니 수술 잘 끝났다고, 10여 분 정도 있다가 수술실 밖으로 나올 거라고. 그 짧은 말 몇 마디가 모든 시간의 흐름을 바로 잡았다. 생각은 글자 단위가 아닌 문장 단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디 그 뿐일까. 새카맣게 타들어가 잿더미로 변해가던 마음속도 촉촉한 물기와 함께 원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대기 시간 50여 분, 수술 시간 30여 분. 부분 마취만 하는 조그만 수술이었다 하지만 '수술실'이란 글자 앞에선 '조그만'이란 단어는 별 위안이 되지 않더라. 창밖을 내다봤다. 비둘기가 날아가고 없었다. 어느 새 밖은 온통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2008년 2월
- 2월 1일에 <스위니토드>를 본 후 한 달 동안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함. 극장이 어떻게 생겼더라?
-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니, 기다릴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 다시 사로잡힘. 이제 그만 좀 놔주지, 응?
- 갑자기 닌텐도DSL이 사고 싶어 머리 굴리는 중. 청소기도 사야 되고, 좌식 사이클도 사야 하는데. 로또를 사볼까 고민 중.
- 닌텐도DSL에서 구르던 머리가 어쩌다가 로또까지 굴러갔는지 또 고민 중. 내 머리는 고민하라고 달린 거였어...
- 사랑하는 사람에게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똑바로 서 있는 삶을 보여주는 것. 무언가 베푸는 것은 그 다음 일.
-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처음 불려봄. '아저씨'라 처음 불렸을 때와 또 다른 느낌. 어쨌든 충격과 공포.
- 수술 전 주사 놓으러 오는 간호사를 보고 불안한 어머니 왈 '왜 맨날 주사만 놓으러 와요', 수술 후 피 뽑으러 오는 간호사를 보고 마음 편해진 어머니 왈 '마음대로 뽑아 가세요'
- 2008년 2월의 단어 : 기다림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다른 때와 달리 그 생각들은 한 글자 한 글자씩 내 머리 속을 흘러갔다. 글자 하나당 1초씩 걸리는 느낌. 세상에, 시간이 왜 이리 안 간다니! 화장실도 가 보고 다른 층에도 가 보고. 글자 하나하나와 매번 1:1로 사투를 벌이다 지쳐갈 때 즈음 전광판 글자가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그러나 시작했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도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작을 기다리는 초조함과 싸웠다면 이제는 끝을 기다리는 초조함과 버티기 한 판에 들어가야 했다. 역시 바라볼 곳은 창밖뿐이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까 조그맣게 흩날리던 게 먼지가 아니라 막 내리려 했던 눈이었던 모양이다. 거리는 어느 새 지저분해졌다. 눈이 쌓이지 않고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창밖에 있던 비둘기도 눈에 젖어 그 모양새가 추레해지고 있었다. 지금 내 마음도 저렇게 누더기가 되어 가는 중일 텐데.
의자에 앉아 조용히 발끝을 내려다본다. 까닥 까닥. 머리 속 생각부터 발끝 움직임까지 온몸이 기다림에서 비롯된 초조함을 내뿜는 중이었다. 크게 숨 한 번 들이쉬고 다시 초조함과 맞서 보려 할 즈음, 수술실에서 녹색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나오셨다. 어머니 수술 잘 끝났다고, 10여 분 정도 있다가 수술실 밖으로 나올 거라고. 그 짧은 말 몇 마디가 모든 시간의 흐름을 바로 잡았다. 생각은 글자 단위가 아닌 문장 단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디 그 뿐일까. 새카맣게 타들어가 잿더미로 변해가던 마음속도 촉촉한 물기와 함께 원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대기 시간 50여 분, 수술 시간 30여 분. 부분 마취만 하는 조그만 수술이었다 하지만 '수술실'이란 글자 앞에선 '조그만'이란 단어는 별 위안이 되지 않더라. 창밖을 내다봤다. 비둘기가 날아가고 없었다. 어느 새 밖은 온통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2008년 2월
- 2월 1일에 <스위니토드>를 본 후 한 달 동안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함. 극장이 어떻게 생겼더라?
-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니, 기다릴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 다시 사로잡힘. 이제 그만 좀 놔주지, 응?
- 갑자기 닌텐도DSL이 사고 싶어 머리 굴리는 중. 청소기도 사야 되고, 좌식 사이클도 사야 하는데. 로또를 사볼까 고민 중.
- 닌텐도DSL에서 구르던 머리가 어쩌다가 로또까지 굴러갔는지 또 고민 중. 내 머리는 고민하라고 달린 거였어...
- 사랑하는 사람에게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똑바로 서 있는 삶을 보여주는 것. 무언가 베푸는 것은 그 다음 일.
-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처음 불려봄. '아저씨'라 처음 불렸을 때와 또 다른 느낌. 어쨌든 충격과 공포.
- 수술 전 주사 놓으러 오는 간호사를 보고 불안한 어머니 왈 '왜 맨날 주사만 놓으러 와요', 수술 후 피 뽑으러 오는 간호사를 보고 마음 편해진 어머니 왈 '마음대로 뽑아 가세요'
- 2008년 2월의 단어 : 기다림
# by | 2008/02/29 12:58 | 달력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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