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17일
에이리언2, 괴물을 외면한 미국의 80년대
1981년 1월 20일 미국. 헐리웃 배우였고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도널드 레이건이 미국의 40번째 대통령으로 취임식을 가졌다. 그리고 같은 날 이란. 무려 400일이 넘게 이란에 억류되었던 50여 명의 미국 외교관들이 전원 풀려났다. 전임 카터 행정부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이란 인질 사건이 레이건 행정부의 시작과 함께 영화처럼 해결된 것이다. 무언가 다른 시작, 무언가 될 것 같다는 희망이 보이는 시작이었다. 지긋지긋한 좌절을 안겨 주었던 미국의 70년대는 그렇게 막이 내리고 있었다.레이건은 80년에 카터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어 81년에 취임했고 89년에 퇴임했으니 미국의 80년대는 말 그대로 레이건의 시대였다. 그 기간 동안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일취월장했다. 소득세를 비롯한 세금을 줄였고 각종 규제를 철폐함과 동시에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펼쳤다. 각종 정부 지출은 줄였지만 오히려 국방비 지출은 늘렸다. 경제력과 군사력, 두 가지만은 확실히 잡겠다는 레이건의 우직한 정면 돌파는 결국 미국으로 하여금 70년대 좌절을 딛고 일어서게 했다. 단순히 좌절로부터 벗어나는데 그친 게 아니다. 레이건 집권 1기에 벌써 미국 경제는 호황으로 돌아설 기미가 보였고, 냉전 시대 다른 한 축인 소련을 군사적으로 압도하기 시작했다.
<에이리언2>는 레이건이 대통령 직에 있었던 시기 중 딱 중간에 만들어졌다. 제임스 카메론이란 감독이 의도적으로 특정 상황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보진 않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영화는 앞서 적어놓은 미국의 상황을 고스란히 담아놓는다. 'This time it's war'라는 호전적 문구로 포스터 카피를 장식한 영화는 긴 시간 우주를 방황한 리플리의 구조부터 보여준다. 리플리는 수십 년을 우주 공간에서 떠돌았지만 1편에서 겪었던 악몽 같은 사건들을 결코 지워낼 수 없다. 게다가 상황이 그녀로 하여금 다시 그 악몽 속으로 들어갈 것을 요구한다. 리플리는 처음엔 거부하지만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정면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 다행히 이번에는 든든한 지원이 있다. 자신감과 여유가 넘치는 군인들에 넉넉한 장비, 행성 개발을 주도한 기업의 직원까지 따라붙은 것이다(해병대 군복 어깨 부위에는 당당히 미국 국기가 붙어있다). 이 정도면 70년대 좌절을 떨쳐낸 미국의 군사·경제적 자신감이 충분히 그 배경에 깔려있다고 봐도 되지 않겠는가. 하나 덧붙인다면, 행성 개발의 주체가 국가가 아닌 기업이고 기업이 생체 무기에까지 관심을 둔다는 내용은 레이건 행정부의 친기업적 정책과 군비 경쟁의 강화라는 측면이 살짝 반영됐다고 봐도 되겠다.
자, 어찌 저찌 하다 보니 영화에 당시 시대 분위기가 버무려졌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해야 할 일은 무얼까? 바로 앞 단락에서 살짝 적어놓았듯이 악몽을 이겨내고 극복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리플리가 해야 할 일이다. 해병대나 다른 사람들은 그 시대의 사람들, 즉 80년대에 얻어낸 여러 측면들을 대표하지만 리플리는 과거로부터 흘러온 존재, 즉 70년대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상처를 이겨내야만 모든 게 완벽해질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해병대와 기업의 재정 지원을 등에 업고 악몽이 시작됐던 지점으로 되돌아간다. 그 곳에서 앞으로 다가올 세대(뉴트)에 대한 책임감과, 오류가 있었던 과거 세대(비숍)의 개선을 발판으로 스스로 상처를 극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리플리는 여성이다. 1편에서 그녀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맞섰다면 2편에선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아주 적극적으로 맞선다. 그 점에 의미를 두어 본다면, 아마 레이건이 퇴임하던 시기까지 계속해서 증가한 여성의 경제 참여율이 영화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 조심스럽게 주장해본다.
이처럼 <에이리언2>는 만들어질 당시의 분위기를 그 안에 간직한다. 그러나 그것이 감독의 세세한 통찰이나 철학이 반영된 결과라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워낙 대세였기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 녹아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절망이나 슬픔을 안겨줄 에이리언에게서 딱히 어떤 의미를 찾아내기가 힘들다. 괴물 캐릭터는 그 수나 외양에서 돋보일 뿐 리플리나 영화 속 다른 설정들과 달리 시대적 의미가 불분명해지고 말았다. 만약 에이리언의 애매함이 우연의 산물이 아닌 감독의 의도였다면 제임스 카메론은 지독한 낙관론자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감독은 레이건 행정부에 대한 또 다른 평가, 즉 경제 구조 왜곡과 빈부 격차 심화, 보수 언론들의 여성 운동 공격, 환경오염의 확대, 지나친 군비 확장에 따른 무력 남용 등 그늘 속에 숨겨진 어두운 면을 외면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원제 : Aliens(1986년)
감독 : 제임스 카메론
출연 : 시고니 위버(리플리), 마이클 빈(힉스), 캐리 헨(뉴트), 렌스 헨릭슨(비숍), 빌 팩스톤(허드슨), 폴 라이저(버크), 자넷 골드스타인(바스케즈), 윌리엄 호프, 알 매튜스, 마크 롤스톤, 리코 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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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2/17 01:12 | 영화...또다른 현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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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알고는 있으면서도 에이리언 시리즈에서는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그저, 나라면 그런 상황 겨우 겪어내도 제정신으로 살지 못 할 거라는 생각만...
하지만 시대상황의 풀이라면, 지금 이렇게 살고 있으니까...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독한가 봐요.
레이건 행정부 시절과 이 영화를 연관지어 말하시니 아이젠하워가 퇴임연설에서 경고한 군산복합체가 본격적으로 미국(어쩌면) 세계를 본격적으로 주무르기 시작한 시기가 레이건 시절인 것도 같네요. 휴우...
위에도 적었지만 워낙 그런 분위기가 대세라 영화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반영된 듯싶어요. 게다가 제가 원래 제 맘대로 해석하는데 재미를 붙여놓은 터라...^^;
히치하이커/ 장르를 바꿔서 성공한, 아주 제대로 된 속편이죠.
아이젠하워의 경고가 정확히 언제부터 유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레이건 행정부에서 확 불을 당겨놓은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오죽 했으면 그 때 여파가 요즘 미국 행보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얘기까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