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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티데이즈오브나이트, 어디 착한 흡혈귀 없어?

 
흡혈귀나 좀비처럼 공포 영화에 자주 쓰이는 소재들을 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사람이나 그들이 일구어놓은 사회의 모습들이 엿보인다. 굳이 감독이나 작가가 애쓰지 않아도 해당 캐릭터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것들을 품는다. 마치 사람과 사회를 반영하는 게 자신들의 운명이나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때론 기가 막힌 공포 영화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가끔은 캐릭터 자체의 개성이 불거져 나와 이야기의 일관성을 흩뜨려 놓거나 의도와 상관없이 관객으로부터 엉뚱한 생각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써티데이즈오브나이트>는 아무래도 후자 쪽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등장하는 흡혈귀 집단에선 이런 저런 특징들이 드러나지만 그것들은 하나로 일관성 있게 묶이질 않는다. 사람 내면의 어둠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권력과 연관된 특성이 두드러지는가 하면 선민의식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이것들을 하나로 잘 버무려 놓았다면 영화는 굉장한 작품이 되었겠지만 불행히도 각각은 앞서 나온 것들을 지근 밟고서 자기 머리만 쳐들려고 할 뿐이다. 오랜만에 바이러스니 어쩌니 하지 않으며 등장한 흡혈귀들과, 피에 절어 세련미와 거리가 먼 그들의 모습은 반가웠지만 이도 저도 아닌 채 날짜만 때우고 가버린 그들에겐 조금 아쉬운 감이 있다. 그러나 덕택에 내 수고는 덜었다. 영화 보고 딴 소리 할 여지가 많이 줄었거든. 하지만 내가 누군가? 이 카테고리에서만큼은 콩 심은 데서 팥 끄집어내고 사과나무에서 배 따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해 내는 나다. 그러니 생각난 김에 몇 줄 적어야겠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란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힘으로 억압하는 무력보다 강할 수 있다는 게 그 의미겠지. 하지만 언론 권력이란 말까지 생겨난 마당에 그 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건 더없이 순진한 짓일 뿐이다. 이젠 펜도 권력을 직접 움켜쥐고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됐고, 그것이 무력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 순진한 건지도 모르겠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란 말은 처음부터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성보다 권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말일 가능성도 있으니까. 어쨌든 순진함 얘기는 그만 두고, 원래 하고자 했던 얘기는 '권력에 맞서기 위해선 반드시 권력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질문을 조금씩 바꾸어도 되겠다. 어차피 영화 속 흡혈귀들도 갈팡질팡이니. '권력' 대신 비슷하게 '힘'을 넣어도 되고, 조금은 다르게 '어둠'을 넣어도 상관없다. 힘에 맞서기 위해선 힘이, 어둠에 맞서기 위해선 어둠이, 그 무언가를 이기기 위해선 꼭 그 무언가와 같이 되어야 하는 걸까? 언젠가 '변질의 시대 어쩌고' 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정말로 어떤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변질이 뒤따라야만 하나? 에벤은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사람이기를 포기한다. 사랑하는 마음만으론 아무 것도 지켜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곤 목적을 이룬 후 변질된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서 삶마저 포기한다. 그러나 영화가 아닌 현실이었다면, 에벤이 아닌 나였다면 그 삶을 결코 쉽게 포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삶은 이미 단 맛을 본 권력이자 힘이며, 선을 망각한 어둠이 아니던가. 현실은 변질을 강요하고 사람들은 그 강요를 받아들이고. 세상은 원래 다 그렇고 그런 거라고?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이 모든 게 부족한 내 생각에서 비롯된 성급한 결론이기를 빌고 싶은 것처럼 그렇고 그런 세상이라는 말도 성급한 단정이었으면 싶다. 써 놓고 보니 글이 길어졌는데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요점만 적는다면 이렇다. 꼭 되어야만 한다면 착한 흡혈귀가 되어 줄 수는 없는 거야?

원제 : 30 Days of Night(2007년)
감독 : 데이빗 슬레이드
원작 : Steve Niles & Ben Templesmith '30 Days of Night'-Graphic Novel
출연 : 조쉬 하트넷(에벤), 멜리사 조지(스텔라), 대니 휴스턴(흡혈귀 우두머리), 마크 분 Jr., 마크 렌달(제이크), 마누 베넷(빌리), 벤 포스터(이방인), 크레이그 홀, 칙 리틀우드, 앰버 세인스버리, 조엘 토벡


꼬리말) 글 쓰다 보면 항상 삼천포에 와 있는데 도대체 삼천포가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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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킬 | 2008/01/21 10:55 | 영화...또다른 현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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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rborDay at 2008/01/21 14:00
그러게 말입니다. 흡혈귀 집단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움직일 정도로 이성적인 것 같은데, 착한 흡혈귀가 되어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요!
Commented by 레드몽키 at 2008/01/21 15:39
다른 감염자들의 특성을 보아하니..아무래도 피에 열광하게 되는 그런 특징이 나오나 봅니다^^인간을 공격해야만하는 이성적 존재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Commented by 지킬 at 2008/01/22 10:55
ArborDay/ 블레이드 속편이 다시 만들어질까요? 꼭 착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데 말이에요...

레드몽키/ 그게 흡혈귀들의 본질이니 할 수 없는 노릇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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