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로그인


나는 전설이다, 우린 영웅을 원해

 
바이러스 감염자를 유인해서 잡으려던 로버트는 그 과정에서 감염자 중 하나가 그를 향해 태양 빛 속으로 잠깐이나마 돌진하려는 것을 목격한다. 태양빛은 감염자들에게 곧 죽음이나 다름없는데도 말이다. 로버트는 그 현상을 보고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감염자들에겐 더 이상 사회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려 할 뿐이고, 지식의 수혜를 받지 못한다.'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판단. 로버트가 내린 판단은 결코 쉽게 내려진 것은 아니다. 그는 수년을 홀로 살아남았고, 그 기간 동안 치료를 위해 숱한 실험을 거듭했으며, 감염자들의 행동을 질릴 만큼 관찰했을 것이다. 그랬음에도 그가 내린 그 판단은 결과적으로 성급했고, 그로 인해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고 만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는 하나의 판단 아래 만들어졌다. 비록 주인공이 죽는 비극이라 하더라도 그 주인공이 사회적 편견을 상징한다든가 편견에 제물로 바쳐지기보단 더욱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영웅으로서 사라져야 한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원작 소설과 다른 결론을 이끌어냈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게 됐다. 2007년 <나는 전설이다>는 이 시대가,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영웅이라는 걸 전제하고 만들어진 셈이다. '미국이 그렇지, 뭐. 헐리웃이 그렇지, 뭐.' 이렇게 이죽거리며 시니컬한 웃음 한 번 날려줄 생각이라면 잠깐만 참아 달라. 썩소도 꼴불견이지만 누워서 침 뱉는 것도 정말 꼴불견이거든. 지난 연말 우리 역시 부조리나 편견을 고민하기보단 영웅을 선택했다. 영웅이라 해서 거창한 어떤 존재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요즘을 사는 우리들은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우리들이 원하는 영웅은 완전무결하거나 깨끗할 이유가 없다. 영웅이란 그저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고 쓸모가 다 했다 싶으면 쉽게 폐기처분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 그런 면에서 5년 임기 경제 대통령, 딱 좋지 않은가? 어쨌거나 툭 하면 우리가 씹어대는 미국이나 우리나 하는 행동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이 글에는 몇 개의 판단이 나왔다. 그 중 로버트의 판단은 틀렸다. 그래서 그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반면 영화 제작자들의 판단은 비교적 정확했고 12월 한 달 동안 영화는 미국에서 심심치 않은 수입을 올렸다. 그리고 또 하나의 판단. 우리들은 지난 연말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선택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판단이 불러올 상황을 함께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결과는 아직 뭐라 하기 이르다. 변화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여준 선택은 <나는 전설이다>를 있게 한 판단 그 자체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이 영화는 영웅을 만들어내고 기존 사람들을 복귀시킴으로써 사람들의 세상이 굳건함을 과시한다. 영화의 결말 하나만 놓고 보면 흠잡을 게 없지만 원작 소설과 대비했을 때 그것은 다수의 세상, 강자의 세상, 기득권자의 세상이 영원할 것이라는 의미로 확대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영화 마지막 부분의 이 대사는 정말 오싹한 대사가 아닌가? '그는 전설이 됐다. 살아남은 우리는 그의 유산이다.'


원제 : I am Legend(2007년)
감독 : 프란시스 로렌스
원작 : Richard Matheson 'I am Legend'
출연 : 윌 스미스(로버트 네빌), 멍멍이(샘), 대쉬 미혹, 앨리스 브라가(안나), 찰리 타한(에단), 살리 리처드슨, 윌로우 스미스, 엠마 톰슨


꼬리말) 윌 스미스는 여러 모로 보기 좋더라. 그런 윌 스미스와 함께 좋은 모습을 보여준 멍멍이 진짜 이름을 알면 저 위 출연진에 진짜 이름을 올릴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이글루스 가든 - 내맘대로 영화해석

by 지킬 | 2008/01/05 22:43 | 영화...또다른 현실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jekyll.egloos.com/tb/356395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KaKaLoT at 2008/01/06 04:38
원작인 소설을 영화 2시간에 모두 담기는 힘들었는 듯 합니다. 시작부분의 긴장감은 꽤나 좋았지만.. 다들 거론하듯, 결말부분의 처리는.. 흠.. 그런식으로 밖에 할 수 없었던 걸까요..ㅎㅎ
글 잘읽고 갑니다. 저도 얼른 잊기전에 영화 포스팅 해야 겠네요~^^
Commented by 지킬 at 2008/01/07 10:10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려니까 힘들긴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도 중반까지만 해도 원작의 주제를 살릴 수 있는 분위기였는데 말이죠.
저는 요즘 보통 한두 주 지나서 영화 포스팅 하는 분위기에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