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04일
타박타박
문이 열리더니 3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편의점으로 들어온다. 대개는 문을 밀면서 문이 닫히기 전에 쑥 들어오기 마련인데 이 여자는 문이 닫히지 않도록 잡고 서 있다. 이럴 경우 십중팔구 뒤 따라 들어오는 꼬맹이가 있기 마련이다. 기대에 찬 눈으로 보고 있자니 역시 조그만 꼬맹이 한 녀석이 타박타박 걸어 들어온다. 하얀 모자를 꾹 눌러쓰고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뒤뚱뒤뚱. 여자는 아이가 들어온 걸 확인하자 문을 닫고 매장을 한 번 둘러본다. 그리곤 우유들이 진열된 매대 쪽으로 걸어간다. 그 매대까지 가는 경로야 여러 길이 있지만 여자가 선택한 길은 내가 라면을 먹고 있던 시식대를 지나쳐 아이스크림과 냉장식품이 진열된 냉동고를 거치는 길. 자연스럽게 아이도 그 뒤를 따른다. 타박타박. 그 짧은 거리를 그리 가볍게 걷는 동안 아이의 맑은 눈동자엔 무엇이 담겼을까? 여자는 흰 우유 하나를 들더니 아이에게 말한다. '흰 우유 먹는다고 했지?' 그러자 아이는 아주 단호하게 한 마디 한다. '아니!' 어찌나 또박또박 얘기했는지 가게 안에 있던 모든 손님의 시선이 아이에게로 향한다. 여자는 다시 한 번 묻는다. '흰 우유 먹는다고 했잖아?' '아니!' '그럼 뭐 먹을 건데?' 아이는 손가락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킨다. 그 끝에 있는 것은 떠먹는 아이스크림. 아무래도 여자는 길을 잘못 선택했던 모양이다. 몇 번의 실랑이. 하지만 오직 '아니'만 외칠 줄 아는 아이는 결국 아이스크림을 쟁취해낸다. 그리고 내 옆에 서서 조그만 숟가락을 제법 야무지게 사용해서 아이스크림을 떠먹는다. 한 수저, 두 수저. 하지만 아이는 그 아이스크림을 끝까지 먹지는 못했다. 아마 여자의 말로 미루어보아 이미 어디선가 아이스크림 하나를 뚝딱 먹어 치우고 온 듯했다. 맛있는 걸 중간에 빼앗긴 아이는 그만 '우앙'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아이의 서러운 울음소리에 나는 피식 피식 웃으며 라면을 먹는다.
2008년 새해가 시작된 지 4일이 지났다. 나흘을 보냈건만 이 365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모르겠다. 항상 그랬다. 세월이란 건 내게 아주 조금씩 경험을 선사했지만 그것만 가지곤 도저히 세월의 본 모습을 알아낼 수 없었다. 어떤 2008년을 보내게 될까? 건강에 나쁘다며 아이스크림을 빼앗아 줄 엄마 같은 존재는 아마 없겠지. 내가 잘못 판단하면 내 몸과 정신을 망칠 때가 되어서야 내가 수렁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될 거다. 그 때는 울어봤자 못난 놈 소리나 듣게 될 테고. 하지만 결과야 어찌 됐든 '아니'란 소리를 확실하게 할 수 있는 한 해를 보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얻기 위한 '아니'가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얻기 위한 '아니'를. 그렇게 내 삶을 살고, 내게 부끄럽지 않은 한 해가 된다면 아이처럼 운다고 누가 손가락질해도 많이 창피하지는 않겠지.
2008년 새해가 시작된 지 4일이 지났다. 나흘을 보냈건만 이 365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모르겠다. 항상 그랬다. 세월이란 건 내게 아주 조금씩 경험을 선사했지만 그것만 가지곤 도저히 세월의 본 모습을 알아낼 수 없었다. 어떤 2008년을 보내게 될까? 건강에 나쁘다며 아이스크림을 빼앗아 줄 엄마 같은 존재는 아마 없겠지. 내가 잘못 판단하면 내 몸과 정신을 망칠 때가 되어서야 내가 수렁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될 거다. 그 때는 울어봤자 못난 놈 소리나 듣게 될 테고. 하지만 결과야 어찌 됐든 '아니'란 소리를 확실하게 할 수 있는 한 해를 보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얻기 위한 '아니'가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얻기 위한 '아니'를. 그렇게 내 삶을 살고, 내게 부끄럽지 않은 한 해가 된다면 아이처럼 운다고 누가 손가락질해도 많이 창피하지는 않겠지.
# by | 2008/01/04 12:21 | 내 안의 소리들 | 트랙백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