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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맨, 자본주의 시대의 영웅

 
러시아. 한 때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대표 주자 노릇을 했던 소비에트 연방의 핵심. 그러나 연방은 붕괴되고 그들이 고수하던 주의는 한 시대의 유물로 사라져갔다. 연방을 이루었다가 독립한 국가들 또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또는 종이 호랑이란 헛명예만 부둥켜안은 채 그렇게 사라져 가는 듯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부터 러시아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이제 동유럽 자본주의의 신흥 거대 국가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석유와 무기 수출은 러시아에게 커다란 돈더미를 안겨 주었고, 국민들의 높은 소비 성향은 커다란 내수 시장을 제공함으로써 자본주의를 품에 안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자본주의의 앞길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그들의 불안한 정치 상황, 특히 체제 유지를 위한 특정 세력의 움직임이 초래할 상황은 서방 세계가 지향하는 모습의 자본주의를 위태롭게 하기에 충분하다. 자세하고 정확한 분석은 아니겠으나 2007년 러시아 자본주의의 현재는 저렇다. 그리고 그 러시아가 영화 <히트맨>의 배경이 된다.

사람들에겐 욕망이 있다. 하고자 하는 욕망, 되고 싶은 욕망, 가지려는 욕망. 한 사람 한 사람의 욕망은 그 개인의 가치관과 삶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개별적이고 고유한 것이지만 전체, 특히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입장에서 본다면 그 고유성을 인정할 필요가 없는 하나의 덩어리일 뿐이다. '개똥이'라 불리는 어떤 사람의 욕망이든, '끝순이'라 불리는 또 다른 구성원의 욕망이든 상관없이 그저 욕망이면 되는 거다. 시스템은 그 시점에서 '개똥이', '끝순이'를 있게 한 삶의 여정 같은 건 문제 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구분을 위한 최소한의 방법으로 기껏 수자만 붙여주는 걸로 그만이다. 1, 2, 3... 그 중 하나인 47.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구성원이자 원동력인 개똥이와 끝순이, 또는 47은 자본주의에 의해 자신들이 어떤 식으로 파악되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물론 알고 있다. 머리로 알든, 몸으로 알든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시스템의 사고방식을 진작 깨달았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구성원'이란 명함엔 소비 주체라는 직책과 함께 소비 대상이라는 직책까지 겸한다는 사실까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욕망을 잃어 소비 주체가 될 수 없거나 시스템의 요구에 따른 소비의 대상이 되는 걸 거부했을 경우 그 명함조차 온전히 내밀 수 없다는 사실까지도. 그러나 단순히 아는 것과 직접 당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자신마저 소비되어야 하는 상황과 직접 맞닥뜨리게 되면 사람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가?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성질 죽이고 순응하는 길, 아니면 분연히 떨쳐 일어나 맞짱 뜨는 길. 개똥이와 끝순이는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으나 제 갈 길 가게 놔두고 지금부터 '47'이 가는 길을 따라가 보자.

47은 킬러다. 그것도 전 세계를 주름잡는 킬러다. 그의 눈과 총이 노린 곳에서 실패란 없다. 그의 총구가 가 닿는 끝에선 언제나 소멸과 망각이란 현상만 일어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아주 훌륭한 소비 주체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돈을 받고 총을 든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훌륭한 소비 객체이기도 하다. 그는 그 점을 모르지도 않고 애써 부정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음모로 자신이 소멸될 상황에 처하자 47은 분노하고 그 누군가에게 맞선다. 킬러 집단의 표본이자 최고였던 47은 이제 다른 킬러들과 똥줄 타게 싸워야 한다. 나이 많은 킬러, 백인 킬러, 흑인 킬러, 러시아 정보부 요원(킬러건 요원이건 소비의 주체는 모두 남자다). 줄줄이 나서서 덤벼 보지만 47 앞에선 별 소용이 없다. 결국 47은 모든 방해를 물리치고 그 누군가의 몸뚱이에 총알을 박는다.

그럼 맞짱 떠서 이긴 47은 자본주의란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난 것일까? 아니, 벗어날 수 없다. 그가 죽인 자는 특정 시스템을 받드는 개인이지 시스템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살해된 자를 시스템과 동격으로 놓는다 하더라도 답은 바뀌지 않는다. 서방 친화적이면서 부패한 러시아 대통령, 보수 강경파를 등에 업고 뒤이어 나타나는 대역 대통령, 언제나 기회를 노리며 뒷공작을 펼치는 미국 정보기관까지. 등장하는 것들은 하나 같이 긍정적 대안이기보단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부패한 또 하나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자, 드디어 결론이 나왔다. 사람들은 결코 시스템으로부터, 자본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너무 길들여져서 꿈을 이루는 것도 자본주의의 방식을 따른다. 영화 내내 오로지 소비의 대상이기만 했던 니카(창녀이자 유일한 여성 캐릭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47이 스스로를 소비시키면서 받은 돈이 분명 뒷받침되었을 것이다. 또한 심지어 저항하는 방식조차 자본주의의 방식을 따른다. 지난 날 사람들이 시스템의 어두운 일면이라 여겨 밤의 어둠 속에 감추었던 것들은 이제 일상이 되어 당당하게 낮의 빛 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공간 안에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이 시스템이 가르쳐준 방식대로 움직이는 47에게 영웅이란 이름을 주어야 하나? 해가 뜬 아침나절, 이미 빛으로 가득한 푸른 하늘 한 구석에 빛을 잃은 달이 떠 있는 장면을 볼 때가 있다. 어둠을 밝히는 것도, 어둠에 가린 것도 아니며 빛에 압도당한 달. 그것도 그냥 빛이 아닌 21세기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빛에 말이다. 저걸 달이라고 해야 하나? 저런 존재를 영웅이라고 해야 하나? 배트맨은 모순에 가까운 정체성에 갈등하면서 반(反)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새로운 영웅시대를 대표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장래 희망까지 돈으로 범벅이 된 요즘, 세상은 반영웅과 다른 또 한 번의 새로운 영웅시대를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원제 : Hitman(2007년)
감독 : 자비에르 젠스
출연 : 티모시 올리펀트(47), 올가 큐릴렌코(니카), 더그레이 스콧(마이크), 로버트 네퍼(유리), 울리히 톰슨(벨리코프), 헨리 이안 쿠식(우드레 벨리코프), 마이클 오페이(젠킨스), 제임스 폴크너(CIA 스미스)


꼬리말) 글이 너무 산으로 가서 미안한 마음에 덧붙인다. 제작자에 '뤽 베송'이란 이름이 올라가 있다. 이 영화의 진상을 알리는 데는 그 사실만으로 충분할 듯싶다.

by 지킬 | 2007/12/03 01:11 | 영화...또다른 현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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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히치하이커 at 2007/12/04 01:07
47과 지킬님의 글 덕에 새삼 도구화된 언어, 고유성을 부정하는 보편성의 폭력이 떠올랐습니다.
언제까지나 쳇바퀴만 죽어라 돌리고 있는 게 지금 우리들의 모습......

그나저나 전 게임(게임은 스릴과 액션의 맛이 제법 잘 살아있는 수작이랍니다)을 해봤던 사람인지라 중년의 냉혹한 멋(?)이 사라진 47의 말끔한 얼굴과 선한(?) 눈빛이 영 거슬리더라구요. (웃음)
Commented by 지킬 at 2007/12/04 11:23
'보편타당'이란 말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우린 꼭 필요할 때 외면하고 굳이 필요없을 때 고집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게임에선 중년 캐릭터였나 보군요. 영화와 게임을 해 보신 다른 분들 글을 읽어보아도 게임에 존재했던 많은 것들이 사라졌더라구요. 뤽 베송 제작이잖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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