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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들, 데굴데굴 60

 
1. 비발디

월요일 밤 첫눈이 내렸었다. 처음엔 비가 오는가 싶더니 이내 굵은 눈송이로 바뀌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내렸던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밤 10시경 강남역으로 지하철을 타려고 갈 때 즈음엔 눈보단 비에 가까웠다. 지상에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 마침내 지하철 플랫폼으로 들어서는 계단에 섰을 땐 아주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두어 달 넘게 이 곳에서 지하철을 탔지만 그 때처럼 사람이 많은 건 처음 봤다. 핸드폰을 머리 위로 치켜들어서 사진을 찍는 사람, 좁은 틈으로 비집고 들어서는 사람, 젖은 우산에 옷이 젖어 투덜대는 사람. 아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5분 정도 기다렸더니 지하철이 들어왔다. 처음부터 다음 걸 타겠다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고 있자니 사람들이 지하철 입구 쪽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간다. 사실 저쯤 되면 자기가 걷고 싶어서 걷는 게 아니다. 뒤에서 미니까 그냥 밀려들어간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지. 저 사람들 중 상당수는 내리는 첫눈을 보면서 애인이나 친구에게 연락도 하고 괜스레 들뜬 마음에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을 것이다. 물론 그 때만 해도 한 시간 후에 이렇게 참담한 꼴로 지하철에 먹혀 들어갈 줄은 생각도 못했겠지만. 탑승 전쟁이 막바지로 향해 가면서 소란이 잦아들자 불현듯 하나의 음악이 귓가에 들려왔다.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1악장. 눈이 내렸다고 지하철역에서 틀어준 모양인데 이 북새통 속에서 이 음악을 도대체 어떤 기분으로 들어줘야 할지 영 판단이 안 서더라. 하긴 겨울 1악장의 분위기가 좀 격하긴 해. 터져 나온 웃음 때문에 그냥 씨익 웃고 말았다.

'혹 이사를 가더라도 지하철 2호선 근처론 절대 안 갈 거야.'

2. 두 번째

화요일 새벽이었지 아마. 새벽 4시쯤에 무슨 소리가 들려서 잠에서 깼다. 부욱 부욱. 닫힌 문틈으로 들려오는 괴이한 소리. 처음에는 어머니가 쌀 씻는 소리인 줄 알았다. 가끔 너무 일찍 밥을 할 때가 있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아니었다. 쌀을 씻으면 으레 나기 마련인 불 붓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부욱 부욱. 계속해서 부욱 부욱. 순간 잠결에 든 생각은 쌀 씻다 죽은 귀신이 방황하다 식탁 위에 올려놓은 쌀을 보고서 이를 갈며 쌀을 씻는 게 아닐까...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잠결에도 어이없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머니 말씀하시길 새벽에 참 눈이 많이 왔다고 하신다. 그제야 퍼뜩 깨달았다. 새벽에 났던 부욱 부욱 소리는 경비 아저씨들이 새벽녘에 눈 치우는 소리였다는 걸. 에구, 죄송스러워라. 잠 못 자고 일 하시는 분들을 얼결에 귀신으로 만들어버렸으니.

3. 스타크래프트

수요일. 또 한 번 강남역. 밤 10시 조금 넘어서 지하철을 타려고 갔다가 월요일의 생각들을 급히 수정해야만 했다. 최고의 난리통이로구나. 계단 위까지 사람들이 빼곡히 차 있다! 연착 방송이 계속해서 나오는 걸 보니 지하철이 제대로 밀렸나보다. 그렇게 안 오던 차량이 한 대가 지나가고 2~3분도 안돼 다음 차량이 온다. 그리고 연이어 또 한 대. 다른 날 같으면 내리는 사람들을 위해 나가는 길 정도는 틔워놓는데 그 날은 그런 것도 없다. 혹시나 뒤로 밀려나서 다음 열차에도 타지 못할까봐 아주 찰싹 달라붙어 있다. 사실 조금 비켜서고 싶어도 뒤에서 밀어대는 통에 그럴 방법도 없어 보인다. 한 때 우연히 여의도 역에서 출근길 지하철 인파와 홀로 맞부딪혔을 때 무한 저글링 러쉬에 맞서는 나 홀로 마린의 심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수요일 강남역에 서 있으면서 라이더스 커널을 통해 꾸역꾸역 공간 이동을 기다리는 히드라에 공감이 가더라. 퉤! 퉤!

by 지킬 | 2007/11/23 11:44 | 내 안의 소리들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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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暗雲姬 at 2007/11/23 12:35
눈이 오면 바퀴 달린 탈것만 난리인 줄 알았더니 지하철로 몰려드는 사람도 난리군요.
Commented by sesism at 2007/11/23 17:08
강남역은 정말 심한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지하철 2호선이 좋아서 이사를 간다면 2호선 근처로 가고 싶어요. 특히 전에 살던 건대-구의-강변이 참 좋아요.
여하튼 지금의 집은 지대가 좀 높은 편이라서 이틀 연속 눈오는 바람에 고생 좀 했죠. 첫눈오던 날은 눈그치고 나가서 눈치우는데 허리가 정말 아팠어요. 새벽에 부욱 부욱 소리내셨던 분들도 고생 많으셨겠네요.
Commented by sesism at 2007/11/23 17:10
아, 그리고, 이 스킨. 아까 저도 스킨바꿔볼까 싶어서 둘러보다가 이 스킨 발견하고는 음산스런 달이 참 근사하다 생각했는데 지킬님하고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
Commented by 지킬 at 2007/11/24 12:46
暗雲姬/ 사람도 조금 늘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지하철의 연착이었을 거예요. 무슨 버스 정거장도 아니고 5분 내에 차량이 꼬리를 물듯이 들어오는 걸 보니 아주 아찔하더군요.

sesism/ 제가 익숙한 2호선 역들은 다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이라 별로 정이 안 간답니다^^;
아파트에 사니 제가 직접 눈을 치울 일은 없더라구요. 경비 아저씨들도 다들 나이가 드신 분들인데 새벽에 꽤나 고생하셨을 거예요.
예전부터 달이 떠 있는 스킨을 갖고 싶었는데 딱 맘에 드는 스킨이라 보자마자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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