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03일
일상들, 데굴데굴 58
1. 끝과 시작
르귄의 <머나먼 바닷가>를 읽고 있었고, 집안 어른의 부고를 들었고, 터널 안에서 차에 치인 고양이의 시신을 봤고, 골목 한복판에서 자연사한 비둘기의 시체와 마주쳤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 이후, 죽음이 내 곁에서 가장 서성이던 시기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죽음에 한 발짝 더 다가가거나 죽음에 대해 친밀감을 갖지는 못했다. 죽음은 언제나 그만큼의 거리에 그만큼의 두려움과 신비함을 품고 그 곳에 있다. 아마도 내가 살아있는 이상, 삶이 죽음을 저어하고 죽음이 삶을 희롱하는 이상 그 거리는 절대 좁혀지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죽음에 휘둘리지 않는 것 뿐.
아파트 입구를 나서는데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아이 하나가 바람결에 떨어지는 낙엽들을 한 손에 그러쥐고 있다. 죽어버린 잎이 무에 아름다울까마는 아이는 어디서 낭만이란 이름을 배웠는지 떨어지는 가을 낙엽을 요리 조리 살피며 부지런히 손과 발을 놀린다. 천진하고 활기 넘치는 아이 앞에선 죽음마저도 속수무책이다. 랄라라~
2. 경제관념
언제부터인가 양심과 경제는 서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 듯하다. 양심을 좇으면 경제관념이 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세상. 잘못 된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일을 해도 될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지 설문 조사를 하는 세상. 그리고 더 좋은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잘못된 일이라도 동참하겠다고 버젓이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들.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아니, 솔직히 우리들을 보고 배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우리들에게 손가락질 할 생각조차 못할 만큼 타락해버리는 게 아닐지 두려울 정도다. 경제 열풍 속에 우리는 너무 소중한 것들을 죽여가고 있다.
3. 또 한 번의 시작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때 시작하는 것. 살아있음으로 해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인지도.
르귄의 <머나먼 바닷가>를 읽고 있었고, 집안 어른의 부고를 들었고, 터널 안에서 차에 치인 고양이의 시신을 봤고, 골목 한복판에서 자연사한 비둘기의 시체와 마주쳤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 이후, 죽음이 내 곁에서 가장 서성이던 시기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죽음에 한 발짝 더 다가가거나 죽음에 대해 친밀감을 갖지는 못했다. 죽음은 언제나 그만큼의 거리에 그만큼의 두려움과 신비함을 품고 그 곳에 있다. 아마도 내가 살아있는 이상, 삶이 죽음을 저어하고 죽음이 삶을 희롱하는 이상 그 거리는 절대 좁혀지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죽음에 휘둘리지 않는 것 뿐.
아파트 입구를 나서는데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아이 하나가 바람결에 떨어지는 낙엽들을 한 손에 그러쥐고 있다. 죽어버린 잎이 무에 아름다울까마는 아이는 어디서 낭만이란 이름을 배웠는지 떨어지는 가을 낙엽을 요리 조리 살피며 부지런히 손과 발을 놀린다. 천진하고 활기 넘치는 아이 앞에선 죽음마저도 속수무책이다. 랄라라~
2. 경제관념
언제부터인가 양심과 경제는 서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 듯하다. 양심을 좇으면 경제관념이 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세상. 잘못 된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일을 해도 될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지 설문 조사를 하는 세상. 그리고 더 좋은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잘못된 일이라도 동참하겠다고 버젓이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들.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아니, 솔직히 우리들을 보고 배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우리들에게 손가락질 할 생각조차 못할 만큼 타락해버리는 게 아닐지 두려울 정도다. 경제 열풍 속에 우리는 너무 소중한 것들을 죽여가고 있다.
3. 또 한 번의 시작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때 시작하는 것. 살아있음으로 해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인지도.
# by | 2007/11/03 13:04 | 내 안의 소리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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