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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영원, 그 불가능에 대하여

 
내가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이유는 단연코 내가 사진을 잘 안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그 진짜 이유 대신 거짓 이유를 댈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주제에 맞춰 글을 쓸 때. 예전에도 이 블로그에서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사진 찍기 싫어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었다. 일상에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미지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간 미쳐버릴 것이고, 그러지 않기 위해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영화 <행복>에 관한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난 그와 비슷한 거짓말을 하려 한다. 내가 사진을 찍지 않는 이유는 나란 존재가, 사람이란 존재가 사진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라고 말이다. 찍을 대상을 찾는 것도, 순간을 포착해내는 것도 사람의 눈과 마음이 하는 일인데 어째서 사람이 사진보다 못하냐고? 글쎄 그게 그냥 그렇다니까 그러네. 따지기는.

영화 포스터를 보니 '사랑, 그 잔인한'이란 문구가 적혀있고, 그 밑에 '행복'이란 제목이 크게 써 있다. 사랑은 잔인하단다. 왜? 변하거든. 온 마음을 홀딱 주고서 사랑하는 상대방의 마음과 모습을 내 가슴에 품고 사는데 어느 날 내가 준 마음은 돌려주지도 않은 채 내가 품고 사는 마음만 쏙 빼 가 버리거든. 남는 것이라곤 마음을 돌려받지 못한 나와 마음이 없는 상대방의 모습 뿐, 즉 빈껍데기뿐이니 잔인해도 이토록 잔인할 수가 없지. 그렇다면 왜 변하는데? 그건 바로 사람이 하는 거라서. 변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하기 때문이고, 내일을 불안해하는 사람이 하기 때문이고, 또 사람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지 않는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그래서 사랑은 변하고, 그래서 사랑은 잔인하다. 그러니까 사랑은 당연히 잔인한 행복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잔인한 행복에 빠져들길 마다하지 않는다. 왜냐고? 설마 내가 답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 건 아니겠지? 궁금하면 신에게 물어봐라. 나한테 따지지 말고.

솔직히 나도 신에게 따져 묻고 싶은 게 있다. 사람을 변덕스럽게 만들었으면 그냥 그렇게 살게 할 일이지 왜 변함없는 영원함을 꿈꾸게 만들었느냐고. 현실에서 맘껏 뛰어보지도 못하고 숨차 하는 꿈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좌절해야 하는 건데? 꿈을 내던지고 이만큼 와 버린 자신을 문득 깨닫고서 우리가 얼마나 슬퍼해야 하는 건데? 오직 죽음으로써만 꿈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쓴웃음을 지어야 하는 건데? 사랑만 잔인한 게 아니다. 신 역시 잔인하긴 매한가지다. 신은 사람으로 하여금 변함없는 영원함을 꿈꾸게 하기 위해 사람의 본성 안에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한 가지 영원함을 심어놓기까지 했다. 그 잔인한 신의 손길에 놀아난 사람들은 결국 대리만족을 위해 사진을 만들어내고야 만 것이리라. 하지만 사진과 함께 영원히 멈춘 채 간직된 순간이란 것은 죽어버린 시간과 함께 완성된 영원함이나 다름없다. 역시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해결책은 죽음, 그것뿐이다.

여기까지 글을 써놓고 보니 뭔가 구체적이질 못하고 참 두루뭉술하다. 이 영화랑 아무 상관없는 신까지 뜬금없이 등장할 정도니 말 다 했지, 뭐. 그런데 그게 꼭 내 탓만은 아니다. <봄날은 간다>가 변하는 사랑을, <외출>이 변해 버린 사랑 이후의 새로운 시작과 열정에 초점을 두었다면, <행복>은 그 둘을 아우르면서 허진호 감독의 첫 작품인 <8월의 크리스마스>까지 하나의 연결 고리로 쭉 잇는 영화라고 하겠다. 누군가는 또 다른 얘기를 하겠지만 내 경우는 <행복>을 보고 나서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보며 품었던 궁금증들이 일부 해소됐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이 글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보편적인 이유다. 그러나 그 이유를 꼭 믿을 필요는 없다. 나아가 이 글 전체를 믿지 않아도 된다. 난 바로 다음 포스팅에서 지금과 전혀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는 변덕쟁이니까. 게다가 벌써 이 글 처음부터 전에 말한 것과 다른 거짓말로 시작하기까지 했다. 설마... 첫 문장부터 이 끝 문장까지 30cm도 안 되는 길이를 내려오는 중에 그 거짓말을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제목 : 행복(2007년)
감독 : 허진호
출연 : 황정민(영수), 임수정(은희), 공효진(수연), 박인환(석구), 신신애(요양원 원장), 류승수(동준), 김기천, 유승목, 김진구

by 지킬 | 2007/10/21 16:15 | 영화...또다른 현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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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暗雲姬 at 2007/10/22 08:41
사람은 변하게 마련이라는 명제를 놓고 수천 번은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합리화시키고 다른 이들을 이해하려는 데에 울궈먹었습니다만
그것에 대한 반항심은 갈수록 무럭무럭 자라데요.
Commented by hotcha at 2007/10/23 13:42
사랑은 양파처럼 껍질을 깔수록 작아지다가, 껍질 자체이기도 하다가, 알맹이인지 껍질인지 헷갈리기도 하다가..머 그런 것일테지만, 하여튼 제겐 아직도 제겐 미지수일뿐이네요.
Commented by 지킬 at 2007/10/24 11:35
暗雲姬/ 그러게요. 저도 내심 수긍하는 편이지만 수긍할 수록 변화무쌍에 대한 반감은 커져만 가더라구요.

hotcha/ 정답이 없지 않나 싶어요. 자신과 상대방에 맞는 사랑을 찾아나가는 수밖에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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