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8월 26일
관심과 배려
우리 어머니는 참 자식 욕심이 많으셨던 분이셨다. 많은 자녀를 원하셨다는 게 아니라 자식들이 뛰어나길 바라셨단 얘기다. 하지만 누군가의 욕심은 상대방에게 강요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누나의 경우가 그랬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학교에서 우수한 축에 들었던 누나는 머리가 커지면서 어머니의 욕심을 수용하지 못했고 그 길로 엇나가버렸다. 덕택에 누나에게 쏟아졌어야 할 어머니의 욕심까지 고스란히 내게 집중이 되고 말았다. 난 유치원을 2년이나 다녀야 했고, 책장에는 언제나 책이 그득 차 있었으며, 내 책상머리에는 항상 어머니가 앉아 계셨다. 어렸기 때문에 딱히 어머니에 대한 반항심 같은 건 없었지만 대신 어머니의 기대는 내게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렇다고 그 부담감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 때는 단순히 느낌이었을 뿐 그게 무엇인지 알만한 나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나를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정확하게 꿰뚫어보셨다. 아이들과도 잘 어울렸고, 공부도 잘 했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는 착한 아이였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일상적인 받아쓰기 같은 쪽지 시험에서 하나만 틀려도 풀이 죽는 걸 놓치지 않으셨다. 그리고 1학기가 끝나갈 즈음 학부모 면담이 있었고, 그 이후로 어머니는 내 책상 앞에 앉아계시지 않았다.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그 때 선생님께서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그냥 놓아두면 이 아이는 자기 할 일을 할 거예요. 그러니 이제 아이를 끌고 가지 말고 스스로 할 수 있게끔 옆에서 도와만 주세요."
몸에 한 번 밴 습관이나 성격은 좀처럼 고치기가 쉽지 않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욕심은 내게 공부라는 측면에서 좋은 습관을 남겨 주셨다.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뭔가를 알아내기 위해서 혼자서도 이 책 저 책 뒤지곤 했다. 그러나 원래 내성적이었던 성격과 어울려 그런 습관이 모든 면에서 좋게 작용하지는 않았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이 종이에 깨알 같이 숫자를 적어 나가는 작업은 좋아했지만 커다란 도화지에 거의 공개된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는 미술은 나를 참 곤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수업 시간 동안 그리는 그림은 지지부진하던지 형편없다가도 집에 가서 그려온 그림은 모양새가 어느 정도 갖춰 있었다. 그 차이가 심해서 가끔은 다른 사람이 그려준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니 내가 미술이란 과목을, 미술 선생님을, 미술을 가르치는 학원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을 지나쳤고, 고 1때였던가? 어찌 어찌하여 또 미술 학원에 등록하게 됐고, 그 곳에서도 한 동안 곤혹스런 감정에 시달려야만 했다. 학원에선 학교처럼 조그만 8절지에 그리는 게 아니라 커다란 4절지에 수채화를 그렸고, 책상 위에 머리 수그리고 그리는 게 아니라 허리 꼿꼿이 편 채 이젤에 올려놓고 그렸다. 뒤에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리는 그림이 그 사람한테 고스란히 다 보일 판이니 내가 얼마나 안절부절못했겠는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학원에서 그림을 그릴 때면 나 혼자일 때가 많았다. 입시 준비를 하는 형, 누나들과 정밀 소묘를 함께 하곤 했지만 묘하게도 수채화를 그릴 때면 나 혼자 정물화를 그리던지, 아니면 우연히 사람이 몰릴 때엔 맨 뒷자리에 내 스케치북이 놓여 있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었다. 그러다 한참 지난 후에야 왜 그런 상황이 됐는지 알게 됐다. 그 날도 학원에 종종 찾아오던 선생님 친구 분이 학원에 오셨더랬다. 그리곤 마침 할 일이 없으셨던지 내 뒤에 서서 내가 그리는 걸 지켜봤다. 나야 당연히 지켜보는 시선이 있다는 것만으로 어디에 어떻게 붓질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공황 상태에 빠지기 직전이었고. 그 때 문 저 쪽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OO이는 그렇게 보고 있으면 못 그려. 혼자 놔뒀다가 나중에 가서 보면 어느 정도는 그려 놓았을 테니까 그 때 보면 될 거야." 내 문제를 다른 사람에겐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지만 그 선생님은 알고 계셨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대한 나를 배려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정밀 소묘할 때만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알고 계신 것 같았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참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정이 많은 분도 계셨고, 엄한 분도 계셨고, 정말 이상적인 선생님 같은 분도 계셨다. 많은 분들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지만 죽을 때까지 위에 적어둔 두 분만큼은 절대 잊지 못할 거 같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끙끙 앓았던 고민을 알아챌 만큼 관심을 가져주셨고, 또 배려를 해 주셨던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 분들로 인해 내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다. 어머니의 지나친 자식 욕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그림에 대한 내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하셨다던 말씀은 그만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 내게 의지를 부여했고,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행동은 내게 따뜻함을 선사했다. 그 분들이 보여준 관심과 배려 때문에 멈출 뻔한 내 발걸음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몸에 한 번 밴 습관이나 성격은 좀처럼 고치기가 쉽지 않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욕심은 내게 공부라는 측면에서 좋은 습관을 남겨 주셨다.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뭔가를 알아내기 위해서 혼자서도 이 책 저 책 뒤지곤 했다. 그러나 원래 내성적이었던 성격과 어울려 그런 습관이 모든 면에서 좋게 작용하지는 않았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이 종이에 깨알 같이 숫자를 적어 나가는 작업은 좋아했지만 커다란 도화지에 거의 공개된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는 미술은 나를 참 곤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수업 시간 동안 그리는 그림은 지지부진하던지 형편없다가도 집에 가서 그려온 그림은 모양새가 어느 정도 갖춰 있었다. 그 차이가 심해서 가끔은 다른 사람이 그려준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니 내가 미술이란 과목을, 미술 선생님을, 미술을 가르치는 학원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을 지나쳤고, 고 1때였던가? 어찌 어찌하여 또 미술 학원에 등록하게 됐고, 그 곳에서도 한 동안 곤혹스런 감정에 시달려야만 했다. 학원에선 학교처럼 조그만 8절지에 그리는 게 아니라 커다란 4절지에 수채화를 그렸고, 책상 위에 머리 수그리고 그리는 게 아니라 허리 꼿꼿이 편 채 이젤에 올려놓고 그렸다. 뒤에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리는 그림이 그 사람한테 고스란히 다 보일 판이니 내가 얼마나 안절부절못했겠는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학원에서 그림을 그릴 때면 나 혼자일 때가 많았다. 입시 준비를 하는 형, 누나들과 정밀 소묘를 함께 하곤 했지만 묘하게도 수채화를 그릴 때면 나 혼자 정물화를 그리던지, 아니면 우연히 사람이 몰릴 때엔 맨 뒷자리에 내 스케치북이 놓여 있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었다. 그러다 한참 지난 후에야 왜 그런 상황이 됐는지 알게 됐다. 그 날도 학원에 종종 찾아오던 선생님 친구 분이 학원에 오셨더랬다. 그리곤 마침 할 일이 없으셨던지 내 뒤에 서서 내가 그리는 걸 지켜봤다. 나야 당연히 지켜보는 시선이 있다는 것만으로 어디에 어떻게 붓질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공황 상태에 빠지기 직전이었고. 그 때 문 저 쪽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OO이는 그렇게 보고 있으면 못 그려. 혼자 놔뒀다가 나중에 가서 보면 어느 정도는 그려 놓았을 테니까 그 때 보면 될 거야." 내 문제를 다른 사람에겐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지만 그 선생님은 알고 계셨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대한 나를 배려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정밀 소묘할 때만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알고 계신 것 같았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참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정이 많은 분도 계셨고, 엄한 분도 계셨고, 정말 이상적인 선생님 같은 분도 계셨다. 많은 분들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지만 죽을 때까지 위에 적어둔 두 분만큼은 절대 잊지 못할 거 같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끙끙 앓았던 고민을 알아챌 만큼 관심을 가져주셨고, 또 배려를 해 주셨던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 분들로 인해 내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다. 어머니의 지나친 자식 욕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그림에 대한 내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하셨다던 말씀은 그만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 내게 의지를 부여했고,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행동은 내게 따뜻함을 선사했다. 그 분들이 보여준 관심과 배려 때문에 멈출 뻔한 내 발걸음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 by | 2007/08/26 13:56 | 내 안의 소리들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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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사람을 그렇게 그리워하시면 다가올 가을을 어떻게 보내시려구요^^
나도 그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선생님에 관한 따스한 영화 한편을 감상하고 갑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삶은 영화처럼
촉촉하거나, 아름답거나, 지독하거나, 궁지에 몰리거나...
그렇기도 하지만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해결의 방법을 모색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 맘대로 보는 영화를 무지 좋아하지만
많이 볼 기회가 없는 저로선
참으로 부러운 삶을 살고 계십니다.
반갑습니다.
하지만 딱 한 분.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었던 그 분에게만은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땐 정말 집안 꼴이 바닥까지 떨어져서 학교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거든요. 하하.
暗雲姬/ 따님 입시 학원에 함께 갔다오신 暗雲姬 님 글을 보고 옛 선생님들이 떠올랐죠. 입시와 경쟁이라는 제도 때문에 뭔가 찍어내는 공장처럼 느껴지는 게 요즘 학교나 학원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실 거라 확신합니다.
hotcha/ 서른 남짓 살았지만 원하는 걸 모두 얻을 수 없다는 건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습니다. 제가 영화를 즐기는 만큼 hotcha님도 다른 무엇을 얻어가는 중이시거나 얻으셨겠죠. 제게 없는 무엇인가를 누리고 계실 테니 역시 부러운 삶을 살고 계시는군요^^
안녕하세요(꾸벅).
히치하이커/ 선생님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도에 휘둘리고 억매일 수밖에 없겠죠.
생각해보니 막상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을 직접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네요, 이런.
글을 읽으면서 제 고등학교 시절의 미술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학교에서의 그 산만한 가운데서 그린 그림이나 만든 조각보다는 집에서 완성한 것들이 결과물이 좋았었요.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저도 누군가에게 관심과 배려를 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
이미 두 따님들이 관심과 배려 속에서 무럭 무럭 크고 있지 않을까요^^
지나칠 정도의 관심을 받으셨었군요.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그 부담감을 떨쳐낼 수 있지만 그 전까진 참 여러 모로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죠. 부모님 관심과 자신의 길 사이에서 좋은 접점을 찾아내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저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걸 확인하셨다면 동질감에 안도하셔야 할 게 아니라 크게 비탄에 빠지셔야 할 일입니다^^;
'이상' 하니까 생각났는데 얼마 전 어떤 영화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관계를 회피하는 사람들은 그 관계가 지닐 무게를 알기 때문에 그렇다고. 몇 년 전만 해도 그냥 '그래, 그래, 맞아'하면서 맞장구 쳤겠지만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졌는지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게 되더군요. 그 무게를 나눌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아마 그 사람은 영원히 회피만 하다가 끝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죠.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생각은 제대로 해도 몸은 따라주지 않는다는 거! 잘못하면 저처럼 심술쟁이에 이상만 좇는, 익살꾸러기 미중년이 될 수도 있으니 미리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