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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들, 데굴데굴 48

 
1. 휴식

월요일은 월요일이라 맥이 빠지고, 화요일과 수요일은 바빠서 지치고, 목요일은 한가해서 진이 빠지고, 금요일은 바쁘기도 한데다 주말이 코앞이라 힘이 들고, 토요일은 늦잠 자고 일어나 집안 정리하다 뻗어버리고, 일요일은 눈만 껌뻑대느라 눈이 피곤해서 그런지 쉬이 지친다. 요즘엔 블로그에 글 올리는 것도 은근히 뼈와 살을 깎는 노동처럼 느껴져 어딘가에 월급 달라고 호소하고 싶을 정도로 벅차다. 그래서 방문하는 블로그엔 덧글도 안 달고 있다. 게다가 거의 3년 동안 휴가 비슷한 것도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일주일 기간의 휴가가 코앞에 떨어져서 그런지 온몸이 빨리 쉬고 싶다고 아우성을 치는 중. 쉬는 기간 동안 뭘 할지 생각 좀 해봤는데 어쩐지 어머니 앞에서 뒹굴 거리다 개나 고양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2. 개

개 하니까 생각이 났는데... 며칠 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왠지 뒤통수가 따갑더라.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더니 조그만 개 한 마리가 계단에서 나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빤~~히. 꼬리는 살랑살랑. 지금 바쁜데 그냥 갈까? 순간의 고민 끝에 몇 발짝 다가섰더니 몸을 돌려 아래로 뛰어 내려간다. 다시 엘리베이터 앞으로 갈까 하다가 혹시나 싶어서 아래를 내려다봤더니 이 녀석 바로 아래층에서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따라오는지 안 따라오는지 살피기라도 하는 듯이. '잠깐 놀아줄까'라는 생각에 반 층 정도 내려갔더니 다시 쪼르르 도망간다. 난간 너머로 밑을 내려다보니 녀석은 아까처럼 다시 위를 쳐다보고 있다. 눈을 마주치고 씨익 웃어준 다음 위층으로 올라갔다. 올라왔다 내려가 버린 엘리베이터 버튼을 다시 누른 후 계단 중간쯤에 쭈그리고 앉았다. 역시 예상대로 부리나케 달려 올라오는 멍씨. 날 보더니 화들짝 놀라 제 자리에 멈춰 선다. 손을 내민 채 그대로 있는 내게 다가올까 말까 고민하는 눈치다. 이제 선택은 네 몫이야, 내게 올지 그냥 등을 돌려 갈지. 조심스레 다가와서 내 손의 냄새를 맡아본다. 냄새를 맡는 녀석의 턱밑을 살짝 쓰다듬었다. 그리곤 머리도 쓱쓱. 녀석도 마음이 놓였는지 내 앞에 철퍼덕 주저앉아서 나를 쳐다본다.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헤어지는 게 아쉽긴 하지만 어차피 남의 집 개인 너와 동물을 키울 생각이 없는 내 인연은 여기까지 아니겠어? 몸을 일으켜 엘리베이터 안으로 후다닥 달려 들어갔다. 뒤를 돌아보니 문이 닫히는 틈으로 어느 새 반 층 정도 올라간 녀석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렇게 잠깐 동안 이름 모를 개와 친구가 되었더랬다.

나중에 안 사실. 이 녀석, 집을 탈출해 계단을 방황한 전력이 이전에도 몇 번 있었던 모양이더라. 경비 아저씨 얘기론 집 안에 검은 개 한 마리가 더 있다고 했는데 유독 이 녀석만 집을 빠져나온단다. 자세히 물어보지 않아서 도대체 어디로 빠져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일탈을 꿈꾸는 꿈 많은 견공인가 보다. 그게 아니면 사람이 떠난 집 안에서 외로움에 지쳐 온기를 찾아 방황한 것일 수도 있겠고.

3. 시들다

개미 때문에 욱 해서 한바탕 난리를 친 적이 있었다(그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때 개미들은 아주 심각한 타격을 입었는지 더 이상 베란다에 대규모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은 뜻하지 않게 살충제 세례를 듬뿍 받은 화분이다. 언제나 비실비실해서 항상 안쓰러웠던 녀석이었는데 분노의 기운을 가득 담은 독한 세례를 견뎌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살아있는 생명을 앞에 두고 포기란 말을 앞세우는 건 비겁한 행동이다. 확실한 사망 선고가 떨어질 때까지 방치할 생각은 조금도 없으나 어쩌면 내 잘못으로 식물 하나가 영원한 휴식에 빠져들지도 모르겠다.

죽어가는 식물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이미 죽어버린 숱한 개미들에 대해선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나다. 시들어 가는 노란 잎들은 내 마음도 노랗게 물들이며 안쓰러움을 키우지만 가끔 보이는 붉은 개미들은 그 때의 흥분만을 돌이켜 줄 뿐이다. 나란 놈도 참...

by 지킬 | 2007/07/22 13:18 | 내 안의 소리들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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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7/22 14:11
1. 저도 요즘은 제가 다니는 블로그에 덧글을 잘 못 달고 있답니다. 휴가 잘 보내세요.

2. 가끔씩 사람이 모두 떠난 집에 혼자 남아 있는 개들은 두 발로 걷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예전에 또디에서 봤던 것 같은데.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아마 개를 키우고 있다면 지금처럼 집을 잘 비우지 못할 것 같아요.

3. 뭐, 그런거죠. 사실 집에 들끊는 개미들을 죽이면서 비통함에 빠지기는 쉽지 않거든요. 그나저나 살아났으면 좋겠네요. 괜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이게 개미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데, 머리 속이 복잡해질까 여기서 스톱.
Commented by 히치하이커 at 2007/07/22 23:30
푹 쉬시길 바랍니다. : )

그럼 제가 개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웃음)
Commented by 도연 at 2007/07/23 03:45
저는 어제 운전하다가 국도에서 한 녀석을 치었어요. 피하느라고 했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었지요.. 마음이 아프네요. 순간 온몸이 쫄아들면서 몸속에서 뭔가가 쩡쩡거리고 울리는 것 같으면서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구요. 우리들은 모두 잔인한것 같애요.
Commented by shuai at 2007/07/23 08:31
저는 덧글도 블로그도 거의 못하고 있어요. 안하는 것도 아니고 못한다고 표현하는게 맞는것 같아요. 안한다고 하면 앞으로 계속 방치하게 될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흑흑.
Commented by 지킬 at 2007/07/23 11:13
ArborDay/ 1. 잘 보내고 싶은데 자꾸 축 늘어지고 싶은 욕구만 커지네요TT
2. 두 발로 걷고 담배도 피고 TV도 볼까요? 궁금해지는 걸요?.?
3. 개미 이야기에요. 하지만 사람 행동이란 게 조금씩 비슷한데가 있으니 어디 다른 곳에 적용될 수도 있겠네요.

히치하이커/ 개미의 명복 비는 일은 히치하이커님께 맡기고 저는 안심하고 화분 재활에만 신경쓰겠습니다^^

도연/ 제가 탔던 버스에 비둘기가 부딪혀 죽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 순간 만큼은 기분이 묘했는데 버스 내릴 때즘 되니까 잊혀지더군요. 하지만 직접 운전하다가 치었다면 확실히 다른 기분일 거예요. 으... 생각만 해도 아찔하군요.

shuai/ 여름이라 그럴까요? 이상하게 몸이 축 쳐지고 같은 일도 힘들게 느껴지는 게...TT
Commented by sesism at 2007/07/23 14:25
휴가 잘 보내세요! 항시 노는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저는 휴가가 어떻게 가버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늘부터 출근했는데 어색하기도 하면서 그래도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인것 같아 마음의 안정을 찾았어요 ㅎㅎ
Commented by 지킬 at 2007/07/24 11:16
이상하게 노는 건 빨리 지나가요. 어제가 토요일인가 싶으면 금방 월요일 아침이고. 일상으로 돌아오셨군요. 빨리 적응하세요^^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7/07/26 01:59
음, 덧글...ㅠㅠ
Commented by 지킬 at 2007/07/26 11:38
조만간 개나 고양이가 되면 더욱 덧글 달기가 어려워질 듯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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