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20일
가위 눌리다
새벽 1시. 보통 때 같으면 자려고 기어 들어갔을 텐데 이 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펼쳤다. 눈앞에 펼쳐진 책은 뜻밖에도 잔인하고 극단적인 내용으로 차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중 한 인물에 심정이 동하고 말았으니 이것도 글쓴이의 힘일까, 아님 그의 명성 탓일까? 어차피 끝까지 읽을 수는 없는 시간이었다. 책을 덮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문장에선 주인공 캐릭터에게 불길하고 앞날을 알 길 없는 운명의 그늘을 덧씌우는 중이었다. 책장 사이로 그 불길함 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책을 꾹 눌렀다. 어쩌면 내 무의식은 어떤 예감 같은 것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불길함은 책의 내용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현실의 나에게도 뻗쳐오고 있음을 말이다.
잠이 들었다. 음... 솔직히 모르겠다. 잠이 든 거 같기도 하고 깨어있던 거 같기도 하고. 비몽사몽이란 표현이 이 때만큼 적합한 때도 없을 듯싶다. 연속된 상황을 쭉 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잠깐 보고 정신을 놓았다가 또 무언가를 잠깐 보고 또 정신을 놓고... 그 때는 잠자리에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꿈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 꿈들 있지 않은가? 연속된 이야기들의 조각들만 기억나고 전체는 흐리멍덩한 꿈들. 게다가 꿈이라고 생각하기에 더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난 완전히 두 개의 나로 분리된 상황이었다. 그냥 방관하는 나와 어떤 현상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나로.
처음 정신이 들었을 땐 똑바로 누운 자세에서 그냥 뒷목이 뻣뻣하다는 느낌 정도였다. 몇 년 전에 목 근육 쪽에 통증이 온 뒤로 피곤하면 항상 뒷목이 뻣뻣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다. 그리곤 곧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문득 정신이 들었다. 뜬금없지만 팝송이 들려오더라. 노래 제목도, 그 음악이 사용됐던 광고도 기억이 안 나지만 분명 광고 음악으로 쓰인 적이 있는 노래였다. 팝송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에는 이상한 외침 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동물의 울음소리 비슷한 외침. 다시 잠이 들었고 다시 정신이 들었다. 무언가가 날 휘감는 것 같았다. 옥죄이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 때 내 자세는 똑바로 누워서 밧줄에 묶인 꼴처럼 생각됐다. 나를 휘감는 허연 무언가를 본 듯도 했다. 하지만 장담은 못하겠다. 그 때 내가 눈을 뜬 거 같지는 않으니까. 다시 잠.
정신이 들었다. 자세는 여전히 똑바로 누운 자세였고 뒷목은 여전히 뻣뻣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이상했다. 정신이 들었다 해도 몽롱한 상태여서 꼭 유체 이탈한 것 마냥 내 머리 위 어딘가에서 그저 방관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하나의 생각이 내 몸 중심부에서 툭 하니 튀어나왔다. '니가 뭔데 내 몸 가지고지랄이야그래!' 강한 불만과 분노가 섞인 외침. 분명 나였다. 지킬과 하이드처럼 분리되었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그 상황은 분명 두 명의 나가 존재하고 있었다. 선과 악이 아닌 방관과 대응으로 대표되는 나.
다시 잠, 그리고 다시 정신 차림. 여전히 한 명의 나는 방관 중. 다른 한 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뭔가 애를 쓰는 중이었다. '뭐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떠올랐지만 곧 알아차렸다. 발을 휘휘 휘두르고 있었다. 발길질의 의도는 없어 보였고 그저 몸부림 정도. 특이했던 건 발을 미친 듯이 휘젓는 것과 달리 상체는 돌처럼 굳어버린 듯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무 막대기에 솜사탕 줄기가 엉겨 붙듯이 무언가가 발놀림에 따라 감기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중에는 내가 발을 움직이는 건지 그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다시 잠.
또 정신이 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방관하던 내가 정신이 들었다고 해야 할 거 같다. 처음에 불만 섞인 외침을 내질렀던 나는 계속해서 무슨 행동을 해 왔던 거 같으니까. 그 녀석이 툭 내던지듯 말했다. '니 맘대로 해라. 내가 널 미워한들 뭐 하겠냐.' 그 말투에 참 여러 가지 감정들이 실려 있었다. 어렸을 때 모든 신을 찾으며 기도하게 했던 간절함도 묻어났고, 어떤 대상에 대한 두려움도 스며 있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니 맘대로 해라'의 핵심인 체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까 뭐랄까, 자존심 강한 꼬마가 힘들다는 소리는 차마 못하고 눈을 부라리며 엉뚱한 소리를 내뱉는 분위기와 비슷한 셈이다. 그 치기 어린 감정들은 몸 밖에서 방관하는 듯한 나를 몸 안으로 쭉 끌어들였다. 둘이 하나가 되면서 알아차렸다. 뒷목이 뻣뻣한 건 단순한 현상이 아니었다. 난 아예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들기 위해 기를 썼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얼마나 애를 썼을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던 거 같다. 무엇인가 '툭'하며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려오더니 몸이 풀렸고 고개를 들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감고 있던 눈을 뜰 수 있었다. 시간을 보니 새벽 4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위에 눌렸다는 걸 안 것은 가슴께에 올려놓았던 내 왼 손이 '툭'하며 바닥에 떨어졌을 때였고, 곧장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망설였던 것은 가위에 눌린 도중에 들었던 내 또 다른 목소리가 말한 문구 때문이었다. '니가 뭔데...' 현실에서 눈을 뜬 나는 구체적 형상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무의식 속에 숨어있던 나는 분명 뭔가를 보았던 모양이다. 사람이란 호기심의 동물이라지만 솔직히 무엇을 봤는지 전혀 알고 싶지 않다.
악몽과 다른 또 하나의 느낌. 굳이 경험해볼 필요는 없었겠지만 기왕 몸과 정신이 푹 빠졌다 나왔으니 기록해둘만한 사건이지 싶다. 젠장, 오늘도 아직까지 잠을 못 자고 있다.
잠이 들었다. 음... 솔직히 모르겠다. 잠이 든 거 같기도 하고 깨어있던 거 같기도 하고. 비몽사몽이란 표현이 이 때만큼 적합한 때도 없을 듯싶다. 연속된 상황을 쭉 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잠깐 보고 정신을 놓았다가 또 무언가를 잠깐 보고 또 정신을 놓고... 그 때는 잠자리에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꿈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런 꿈들 있지 않은가? 연속된 이야기들의 조각들만 기억나고 전체는 흐리멍덩한 꿈들. 게다가 꿈이라고 생각하기에 더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난 완전히 두 개의 나로 분리된 상황이었다. 그냥 방관하는 나와 어떤 현상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나로.
처음 정신이 들었을 땐 똑바로 누운 자세에서 그냥 뒷목이 뻣뻣하다는 느낌 정도였다. 몇 년 전에 목 근육 쪽에 통증이 온 뒤로 피곤하면 항상 뒷목이 뻣뻣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다. 그리곤 곧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문득 정신이 들었다. 뜬금없지만 팝송이 들려오더라. 노래 제목도, 그 음악이 사용됐던 광고도 기억이 안 나지만 분명 광고 음악으로 쓰인 적이 있는 노래였다. 팝송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에는 이상한 외침 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동물의 울음소리 비슷한 외침. 다시 잠이 들었고 다시 정신이 들었다. 무언가가 날 휘감는 것 같았다. 옥죄이는 느낌은 없었지만 그 때 내 자세는 똑바로 누워서 밧줄에 묶인 꼴처럼 생각됐다. 나를 휘감는 허연 무언가를 본 듯도 했다. 하지만 장담은 못하겠다. 그 때 내가 눈을 뜬 거 같지는 않으니까. 다시 잠.
정신이 들었다. 자세는 여전히 똑바로 누운 자세였고 뒷목은 여전히 뻣뻣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이상했다. 정신이 들었다 해도 몽롱한 상태여서 꼭 유체 이탈한 것 마냥 내 머리 위 어딘가에서 그저 방관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하나의 생각이 내 몸 중심부에서 툭 하니 튀어나왔다. '니가 뭔데 내 몸 가지고
다시 잠, 그리고 다시 정신 차림. 여전히 한 명의 나는 방관 중. 다른 한 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뭔가 애를 쓰는 중이었다. '뭐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떠올랐지만 곧 알아차렸다. 발을 휘휘 휘두르고 있었다. 발길질의 의도는 없어 보였고 그저 몸부림 정도. 특이했던 건 발을 미친 듯이 휘젓는 것과 달리 상체는 돌처럼 굳어버린 듯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무 막대기에 솜사탕 줄기가 엉겨 붙듯이 무언가가 발놀림에 따라 감기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중에는 내가 발을 움직이는 건지 그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다시 잠.
또 정신이 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방관하던 내가 정신이 들었다고 해야 할 거 같다. 처음에 불만 섞인 외침을 내질렀던 나는 계속해서 무슨 행동을 해 왔던 거 같으니까. 그 녀석이 툭 내던지듯 말했다. '니 맘대로 해라. 내가 널 미워한들 뭐 하겠냐.' 그 말투에 참 여러 가지 감정들이 실려 있었다. 어렸을 때 모든 신을 찾으며 기도하게 했던 간절함도 묻어났고, 어떤 대상에 대한 두려움도 스며 있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니 맘대로 해라'의 핵심인 체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까 뭐랄까, 자존심 강한 꼬마가 힘들다는 소리는 차마 못하고 눈을 부라리며 엉뚱한 소리를 내뱉는 분위기와 비슷한 셈이다. 그 치기 어린 감정들은 몸 밖에서 방관하는 듯한 나를 몸 안으로 쭉 끌어들였다. 둘이 하나가 되면서 알아차렸다. 뒷목이 뻣뻣한 건 단순한 현상이 아니었다. 난 아예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들기 위해 기를 썼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얼마나 애를 썼을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던 거 같다. 무엇인가 '툭'하며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려오더니 몸이 풀렸고 고개를 들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감고 있던 눈을 뜰 수 있었다. 시간을 보니 새벽 4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위에 눌렸다는 걸 안 것은 가슴께에 올려놓았던 내 왼 손이 '툭'하며 바닥에 떨어졌을 때였고, 곧장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망설였던 것은 가위에 눌린 도중에 들었던 내 또 다른 목소리가 말한 문구 때문이었다. '니가 뭔데...' 현실에서 눈을 뜬 나는 구체적 형상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무의식 속에 숨어있던 나는 분명 뭔가를 보았던 모양이다. 사람이란 호기심의 동물이라지만 솔직히 무엇을 봤는지 전혀 알고 싶지 않다.
악몽과 다른 또 하나의 느낌. 굳이 경험해볼 필요는 없었겠지만 기왕 몸과 정신이 푹 빠졌다 나왔으니 기록해둘만한 사건이지 싶다. 젠장, 오늘도 아직까지 잠을 못 자고 있다.
# by | 2006/10/20 02:11 | 내 안의 소리들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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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ism/ 그다지 상쾌한 느낌은 아닙니다. 청각이 유난히 뚜렷해지는 것 같았고 목의 뻣뻣함 이외에는 다른 신체 부분에 대한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일찍 잠 못 드는 건 아마 너무 피곤해서 그런 듯싶습니다^^
수수꽃다리/ 입만 보이는 가위라... 그것도 별로 경험해보고 싶지 않네요.
제 블로그에 놀러오시는 분들 중 가장 많은 이름을 갖고 계십니다 ㅋㅋ
레드몽키/ 에... 얼마나 공부가 하기 싫으셨으면...; 이해합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공부하기 싫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