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16일
레이디인더워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식스센스>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충격적 잔혹동화'. 우리나라 영화 포스터에 새겨진 광고 문구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두 개의 단어. 먼저 '<식스센스>'. 다들 알다시피 샤말란 감독의 지금을 있게 해 준 영화이자 자연스럽게 '반전'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할 만큼 뒤통수치는 영화의 대표작이다. 두 번째는 '잔혹동화'. 이미 단어 자체만으로도 어울리지 않는 합성어인데다 특히나 '잔혹'이란 단어는 샤말란 감독에게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 단어 그대로의 의미가 아닌 함축과 상징이 포함된 의미라고 보는 게 더 좋을 듯하다. 거기에 감독이 만든 이전 영화들의 특징까지 감안해서 미루어보면, 아마도 판타지가 가미된 현실 얘기가 아닐까 싶다. 물론 '잔혹'이란 단어는 '현실'이란 단어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것일 테고. 영화를 보기 전, 영화 포스터만 보고 사람들이 끌어낼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다. 그런데 사람들이 과연 '<식스센스>'와 '잔혹동화' 중 어느 쪽에 더 관심을 둘까? 굳이 질문을 하긴 했지만 괜한 질문이다. 열에 아홉은 분명 <식스센스>, 즉 반전에 관심을 두고 이 영화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영화는 반전에 관심이 없다. 대신 잔혹동화에 큰 비중을 둔다. 우리나라 영화 포스터 문구 중 반은 쓸데없는 허위 정보를 제공한 셈이다.잔혹동화에 비중을 둔다고 했으니 영화가 바라보는 세상 얘기, 그러니까 사람들 얘기부터 해야겠다.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많은 것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등을 돌린 대상이 전쟁이나 증오, 탐욕 같은 것이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못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받은 상처를 감싸 안지 못한 채 도망쳤고, 자신들이 가진 주관에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방황했다. '남과 다름'이라는 다양성 존중에 가치를 둔 '개성' 본래의 의미는 잊은 채 '남보다 뛰어남'이라는 경쟁 수단으로서 '개성'에 집착해온 지 오래다. 일상이나 사소한 물건으로부터 얻는 소소한 재미들은 더 이상 남 앞에 내세울 수 있는 당당한 행복일 수가 없게 됐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회피와 모호함, 유별남에 대한 집착, 비일상적인 것에 대한 탐닉으로 꽉 차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많은 이들의 삶이 똑바로 서 있기 힘들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 태어난 세상, 그 곳에서 똑바로 살아갈 수 없으니 그 현실이 잔인하다고 말하는 길 외에 어떤 표현이 더 필요하겠는가.
영화는 이처럼 잔혹한 세상을 바탕으로 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이 영화에서 경계를 무너뜨리고 현실로 파고든 환상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우리를 위협하는 것을 눈에 보이도록 모양새를 갖추게 했다는 데 있다. 그래서 물의 요정 '스토리(캐릭터 이름이다)'는 사람들이 올바르게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모든 긍정적 가치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고, 모든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스토리를 공격하는 늑대 비슷한 괴물 캐릭터는 끊임없이 세상으로부터 가해지는 압력과 억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현실과 환상이 하나로 얽히면서 영화는 이 세상을 바탕으로 한 잔혹동화를 완성시키고 그로부터 하나의 결과를 끄집어낸다. 그 결과는 이렇다.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들, 그것은 사소함에서 소중함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일 수도 있고 마음 속 어딘가에 깊이 감추어진 긍정적 가치들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그런 것들을 되찾을 때 비로소 변화의 씨앗이 움틀 수 있다는 거다.
<레이디인더워터>는 위에 써 놓은 대로 무엇보다 개인의 삶이 바로 서야 함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 그 얘기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운명에 관한 얘기도 하고 있는데 예정된 운명이라고 해서 그저 흘러가는 대로 놓아두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식으로 말하진 않는다. 예정된 운명이 가능하려면 자신의 삶을 통해 역할과 의미를 깨닫고 삶을 바로 세워야만 한단다. 그것은 다시 말해 회피와 방관으로 일관하는 삶이라면 어떤 미래도 존재하지 않을 거란 의미와도 통한다. 이처럼 운명이란 얘깃거리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감독의 이전 작품 중 하나인 <싸인>과 맞닿는 데가 있다. 조금은 애매하게 다가왔던 <싸인>의 운명론이 이번 영화를 통해 확실하게 갈무리되었다고나 할까.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더 나은 세상을 얘기했다는 점에서 이상향을 다루었던 <빌리지>를 떠올리게도 한다. 특정인의 노력이나 통제가 아닌 자신들이 깨닫고 바로 서게 될 때에야 비로소 더 나은 세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빌리지>에서 엿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했다.
샤말란 감독은 <레이디인더워터>로 그의 다섯 번째 퍼즐 조각을 끼워 넣었다(<식스센스>부터 그의 이름과 영화가 본격적으로 알려졌다고 한다면). 아마 자리에 놓이는 퍼즐 조각이 늘어날수록 그가 그려내는 전체 그림의 윤곽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를 터이니 똑같은 그림을 두고 얼마든지 달리 해석하는 게 가능하다. 그래서 누구는 여전히 샤말란 감독을 깜짝쇼 연출자로만 바라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경우는 <싸인>이나 <빌리지>를 보면서 '이 사람 이제는 깜짝쇼 연출자가 아닌 이야기꾼이 되어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고, <레이디인더워터>를 보면서 그 생각은 더욱 확실해졌다. 동시에 그 긍정적 확신 너머로 어쩐지 부담스런 이야기꾼이 되어간다는 느낌도 조금 고개를 드는 중이다. 적당한 비교가 될지 모르겠으나 테리 길리엄의 <그림형제>가 딱 알맞은 풍자와 상징과 이야기로 범벅이 된 채 그 속에서 감독의 목소리가 은근히 풍겨 나온다면 샤말란의 <레이디인더워터>는 캐릭터를 통해 감독의 목소리가 직접 뛰쳐나오는 경향이 있다. 샤말란 감독이 어디로 어떻게 갈지는 다음 영화가 나오기 전까진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그의 작품 성향이 계속된다고 가정했을 때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그 무너진 경계 속에 조금 더 얼버무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원제 : Lady in the Water(2006년)
감독 : M. 나이트 샤말란
출연 : 폴 지아매티(클리브랜드),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스토리), 제프리 라이트(듀리), M. 나이트 샤말란(빅), 신디 청(영순), 밥 발라반(해리), 사리타 쿠드허리, 프레디 로드리게즈(레지), 메리 베스 허트(벨 부인), 빌 어윈, 노아 그레이-카베이(조이), 야레드 해리스
꼬리말1) 영화 속에는 영화 평론가 캐릭터가 한 명 등장하는데 그가 맞이하는 운명은 평론가들을 향한 모든 감독들의 짓궂은 농담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언중유골이라고 평론가를 둘러싼 그 농담 속에서 날카로움이 번득인다. 자신의 삶과 무관한 것 또는 동떨어진 것에 대한 확신은 삶에 부작용을 불러온단다. 이 블로그에 있는 모든 영화 관련 글들... 내 삶과 관련 있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다(그렇다고 내가 영화 평론을 한다는 건 아니다).
꼬리말2) 개인의 삶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거대 세력의 개입이나 음모를 아예 무시하고 있진 않다. 슬쩍 언급하는 걸로 봐서 언젠가 만들 다음 영화들에서 다룰지도 모를 일.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다. 사회성이 짙거나 정치 냄새 풀풀 풍기는 샤말란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도 어쩐지 흥미로울 듯한데...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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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6/10/16 09:48 | 영화...또다른 현실 | 트랙백(2)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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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레이디 인 더 워터(Lady in the Water..
(언제나 그렇듯이..스포일러성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림형제로 대변되는 전래동화들은 실제론 정말 아이들을 위했다기보다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내려오는 어떤 설화에 기초한 어른들의 이야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 그런 전래동화들의 내면을 엿보면 도저히 아이들을 위한다고 보기엔 설정의 잔혹성이나 현대사회의 사회규범에서는 좀 어긋난 내용이 많죠.. (백설공주가 사실은 아버지인 왕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든지..권선......more
제목 : 레이디 인 더 워터 (Lady In The Wate..
이제 더 이상 샤말란은 반전 강박증에 시달리지 않는 모양이다. <식스센스>로부터 거리두기도 성공했다. <빌리지>에서 조짐이 보이더니 <레이디 인 더 워터>로 샤말란식 드라마 투르기를 완성했다. 누군가는 샤말란이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거린다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메타포와 기묘하게 엮어가는 스토리텔링을 평가절하했다. 길 잃은 천사를 하늘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소시민들이 힘을 합친다는 내용을 <빌리지......more
prelude/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두번째 문단'까지'... 거기'만'... 흠... 아무렴 어떻습니까?^^
제가 더 마음의 상처를 받고 우울해 지던 찰나, 이 글을 보니 위로가 되네요.^^
샤말란 감독을 너무나 좋아하고, 레이디인더워터 역시 전 무릎을 치면서 봤거든요.
제 마음 속에서 빙빙 돌기만 하고 글로 표현이 안 되던 것들을 이렇게 명확히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싸인>과 맞닿은 느낌에 특히 이 영화에 애정이 가네요.
한편, 이번 영화에서는 감독 자신의 목소리가 캐릭터를 통해 직접적으로 튀어나오는 경향이 있고, 앞으론 그걸 좀 더 얼버무렸으면 한다는 님의 말씀에도 크게 공감합니다.
아직 젊기에 미래가 더 기대되는 감독, 그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좋은 글 정말 잘 읽고 갑니다.
이 글로 위로가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정치색 짙은 영화를 한 번 기대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