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14일
일상들, 데굴데굴 19
1. 그래도 할 건 다 해요
여자 아이 둘과 엄마가 저만치서 찻길을 건넌다. 엄마는 두 딸 중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건너는 중이고 그래도 대여섯 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좀 컸다고 엄마 뒤를 손도 잡지 않고 한눈을 팔면서 졸래졸래 따른다. 아이가 한눈을 파는 대상은 아마도 사탕. 맛있게 쪽쪽 빨며 가던 아이는 길 중간쯤에서 그만 넘어지고 만다. '아앙~'하고 들려오는 울음소리. 엄마가 얼른 뒤를 돌아보고 다가오지만 넘어진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 혼자 일어난다. 아이의 여기저기를 살피던 엄마가 달리 혼을 내지 않는 걸 보니 아이는 다친 데가 없는 거 같다. 아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땅을 짚었던 두 손을 바지춤에 쓱쓱 문지른다. 그리곤 또 다시 사탕을 빤다. 그 순간에도 아이는 울고 있다.
시장에서 떡볶이와 튀김·순대를 파는 곳. 할머니와 어린 손녀가 자리에 앉아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중이다. 할머니는 손녀 옆에 물컵과 포크를 놓아준다. 그 모양을 가만히 보던 아이가 젓가락이 꽂힌 통을 뒤적거리더니 젓가락 두 개를 한 손에 하나씩 꺼낸다. 그리곤 할머니 앞에 그 젓가락을 x자 모양으로 놓는다. 할머니가 손녀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웃고 아이는 그런 할머니를 마주 보며 웃는다. 아마도 아이 앞에 놓인 포크보다 할머니 앞에 놓인 젓가락이 훨씬 바쁘겠지만 할머니의 마음이야 수고로움보다 넉넉함으로 꽉 찰 것이다.
삶은 서툴수록 달콤한 걸까? 생각이 바로 선 삶이 진정한 삶이겠지만 때론 전염성이 강한 서툰 아이들의 삶이 마냥 부럽다. 하긴... 생각도 바로 서지 못했으니 아이들이 부러운 것도 이상할 게 없지.
2. 똥 맞은 날
화창한 어느 오후. 기분 좋게 공원을 가로지르는데 무엇인가 머리에 떨어졌다. 나뭇잎치곤 묵직하고 딱딱한 나무열매라고 생각하기엔 착 달라붙는, 그 느낌이 아주 묘한 무언가가. 순간 머리 속에 떠오르는 한 단어는... '새똥'. 99%의 확신과 1%의 의심. 그래도 그 1%의 의심이 현실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공원 화장실에 들어가 확인해봤지만 역시 달리 99%가 아니었다. 위로 뻥 뚫린 하늘 밑을 지나다가 맞았으면 그 엄청난 확률에 혹해 로또라도 사겠건만 이건 나무 밑을 지나다가 맞았으니 말 그대로 봉변이렷다.
그러니까 바로 그 날부터였다. 내가 밤마다 악몽을 꾸어온 것이 말이다. 3일 전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커다란 X덩이를 맞았고, 이틀 전에는 하늘에서 X비가 내리더니만 어제는 하릴없이 X벼락에 휩쓸려 내려가더라. 아침에 잠에서 깰 때마다 나지도 않는 냄새 때문에 인상을 찌푸린다. 환청이나 환각에 시달렸단 얘기는 들어봤어도 이건 참...
3. 북괴
요즘 참 피곤하다. 조금 많다 싶은 업무량이 두어 달 정도 계속되면서 생활 리듬이 깨졌고 몸 상태도 많이 흐트러졌다. 어느 순간부터 아침잠이 늘어나더니만 이번 주부터는 아침도 못 챙겨먹고 하루 두 끼 뿐이다. 잠과 일의 반복되는 연속. 그러다보니 바깥일에 대한 반응이 무뎌지게 되더라. 그 바깥 일 중 하나가 북핵 문제. 비몽사몽 중에 TV 뉴스도 힐끗 봤고 인터넷 포털 기사들도 몇 개 봤지만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갔다. 그런데 그 무덤덤함 가운데서도 내 관심을 끌었던 건 북한을 비판하는 시위자들을 보여준 뉴스 장면이었다. 핵 문제를 일으킨 북한을 비난하면서 글이 적힌 무언가를 태우는 장면이었는데 그 글 중 '북괴'라는 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80년대 초반,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이란 가사로 시작해서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로 끝나는 노래를 초등학교(그 때는 국민학교라 불렀었다)에서 배우던 시절. 반공이 교육의 우선 과제였을 때 우리가 북쪽을 가리키며 흔히 사용했던 단어가 아마 '북괴'였었지. 그 때는 북한 사람들 머리에 다 뿔이 난 줄 알았고 이빨은 짐승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줄만 알았다. 이젠 지나가버린 시절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어쩌면 뉴스에서 본 그 '북괴'라는 단어는 내 착각인지도 모른다. 사실 북한의 핵 실험 뉴스를 듣는 순간 '어쩌면 이 사회가 그나마 지니고 있던 융통성마저 사그라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그 생각의 연장에서 엉뚱하게 '북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분명 내 착각이고 기우일 테지.
그런데 솔직히 모르겠다. 북한의 핵 실험 그 자체와 툭 하면 색깔 논쟁에 휩싸이는 우리 사회의 경직 중 어떤 게 더 위험한 것인지를.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 이후 자신들의 뻣뻣해진 칼을 전쟁에 휘둘렀고 그 기세는 지금까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손에 쥐게 된 뻣뻣한 칼로 직접 먼저 나서서 전쟁에 휘두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칼은 어디로 향할까?
여자 아이 둘과 엄마가 저만치서 찻길을 건넌다. 엄마는 두 딸 중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건너는 중이고 그래도 대여섯 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좀 컸다고 엄마 뒤를 손도 잡지 않고 한눈을 팔면서 졸래졸래 따른다. 아이가 한눈을 파는 대상은 아마도 사탕. 맛있게 쪽쪽 빨며 가던 아이는 길 중간쯤에서 그만 넘어지고 만다. '아앙~'하고 들려오는 울음소리. 엄마가 얼른 뒤를 돌아보고 다가오지만 넘어진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 혼자 일어난다. 아이의 여기저기를 살피던 엄마가 달리 혼을 내지 않는 걸 보니 아이는 다친 데가 없는 거 같다. 아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땅을 짚었던 두 손을 바지춤에 쓱쓱 문지른다. 그리곤 또 다시 사탕을 빤다. 그 순간에도 아이는 울고 있다.
시장에서 떡볶이와 튀김·순대를 파는 곳. 할머니와 어린 손녀가 자리에 앉아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중이다. 할머니는 손녀 옆에 물컵과 포크를 놓아준다. 그 모양을 가만히 보던 아이가 젓가락이 꽂힌 통을 뒤적거리더니 젓가락 두 개를 한 손에 하나씩 꺼낸다. 그리곤 할머니 앞에 그 젓가락을 x자 모양으로 놓는다. 할머니가 손녀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웃고 아이는 그런 할머니를 마주 보며 웃는다. 아마도 아이 앞에 놓인 포크보다 할머니 앞에 놓인 젓가락이 훨씬 바쁘겠지만 할머니의 마음이야 수고로움보다 넉넉함으로 꽉 찰 것이다.
삶은 서툴수록 달콤한 걸까? 생각이 바로 선 삶이 진정한 삶이겠지만 때론 전염성이 강한 서툰 아이들의 삶이 마냥 부럽다. 하긴... 생각도 바로 서지 못했으니 아이들이 부러운 것도 이상할 게 없지.
2. 똥 맞은 날
화창한 어느 오후. 기분 좋게 공원을 가로지르는데 무엇인가 머리에 떨어졌다. 나뭇잎치곤 묵직하고 딱딱한 나무열매라고 생각하기엔 착 달라붙는, 그 느낌이 아주 묘한 무언가가. 순간 머리 속에 떠오르는 한 단어는... '새똥'. 99%의 확신과 1%의 의심. 그래도 그 1%의 의심이 현실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공원 화장실에 들어가 확인해봤지만 역시 달리 99%가 아니었다. 위로 뻥 뚫린 하늘 밑을 지나다가 맞았으면 그 엄청난 확률에 혹해 로또라도 사겠건만 이건 나무 밑을 지나다가 맞았으니 말 그대로 봉변이렷다.
그러니까 바로 그 날부터였다. 내가 밤마다 악몽을 꾸어온 것이 말이다. 3일 전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커다란 X덩이를 맞았고, 이틀 전에는 하늘에서 X비가 내리더니만 어제는 하릴없이 X벼락에 휩쓸려 내려가더라. 아침에 잠에서 깰 때마다 나지도 않는 냄새 때문에 인상을 찌푸린다. 환청이나 환각에 시달렸단 얘기는 들어봤어도 이건 참...
3. 북괴
요즘 참 피곤하다. 조금 많다 싶은 업무량이 두어 달 정도 계속되면서 생활 리듬이 깨졌고 몸 상태도 많이 흐트러졌다. 어느 순간부터 아침잠이 늘어나더니만 이번 주부터는 아침도 못 챙겨먹고 하루 두 끼 뿐이다. 잠과 일의 반복되는 연속. 그러다보니 바깥일에 대한 반응이 무뎌지게 되더라. 그 바깥 일 중 하나가 북핵 문제. 비몽사몽 중에 TV 뉴스도 힐끗 봤고 인터넷 포털 기사들도 몇 개 봤지만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갔다. 그런데 그 무덤덤함 가운데서도 내 관심을 끌었던 건 북한을 비판하는 시위자들을 보여준 뉴스 장면이었다. 핵 문제를 일으킨 북한을 비난하면서 글이 적힌 무언가를 태우는 장면이었는데 그 글 중 '북괴'라는 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80년대 초반,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이란 가사로 시작해서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로 끝나는 노래를 초등학교(그 때는 국민학교라 불렀었다)에서 배우던 시절. 반공이 교육의 우선 과제였을 때 우리가 북쪽을 가리키며 흔히 사용했던 단어가 아마 '북괴'였었지. 그 때는 북한 사람들 머리에 다 뿔이 난 줄 알았고 이빨은 짐승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줄만 알았다. 이젠 지나가버린 시절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어쩌면 뉴스에서 본 그 '북괴'라는 단어는 내 착각인지도 모른다. 사실 북한의 핵 실험 뉴스를 듣는 순간 '어쩌면 이 사회가 그나마 지니고 있던 융통성마저 사그라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그 생각의 연장에서 엉뚱하게 '북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분명 내 착각이고 기우일 테지.
그런데 솔직히 모르겠다. 북한의 핵 실험 그 자체와 툭 하면 색깔 논쟁에 휩싸이는 우리 사회의 경직 중 어떤 게 더 위험한 것인지를.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 이후 자신들의 뻣뻣해진 칼을 전쟁에 휘둘렀고 그 기세는 지금까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손에 쥐게 된 뻣뻣한 칼로 직접 먼저 나서서 전쟁에 휘두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칼은 어디로 향할까?
# by | 2006/10/14 03:03 | 내 안의 소리들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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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얼른 탈출하셔야겠습니다.
3. 어릴 적엔 정말 김일성이 돼지이고, 북한사람들은 늑대인줄 알았답니다. '북괴'라. 참 세월 무상하게 만드는 단어네요.
2. 다행히 오늘은 꿈을 안 꾸었습니다. 말 그대로 죽은 듯이 자다 일어났어요.
3. 그 단어를 다시 볼 거란 생각을 못했었죠. 전 북한 사람들 피부색이 온통 빨간색인 줄 알았던 시절이었어요.
백원만. 소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