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맨 리턴즈, 21C로 돌아온 20C의 그 남자 영화...또다른 현실

1. 혼자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여러 감정을 선사한다. 누군가는 마주볼 사람이 없어서 외로워하고, 누군가는 내민 손을 잡아줄 이 없음으로 해서 두려워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홀로 남겨진 듯 동떨어져 단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보니 '혼자'가 선사한 그 부산물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무진 애를 쓰게 마련이다. 연인을 찾아, 신을 찾아, 동료를 찾아 그들은 알 수 없는 세상 속을 하릴 없이 떠돈다. 그러다 알맞은 대상을 찾게 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곤 하는데 모두가 그런 유형으로 살아가진 않겠지만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삶의 형태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영웅의 귀환을 그린 <수퍼맨 리턴즈>라고 해서 앞서 적은 '혼자'의 의미와 결과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거의 신에 가까운 수퍼맨마저도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픈 욕망에 시달리는 존재로 소개한다. 수퍼맨이 고향별을 찾아 떠남으로써 생긴 수년 동안의 영웅 공백기가 바로 그의 욕망의 크기를 대변한다고 하겠다. 로이스도 마찬가지다. 차이점이라면 수퍼맨이 존재론적 의미에서 언급된 반면, 로이스는 좀 더 시각을 좁혀 개인의 사랑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봤다는 정도. 심지어는 렉스까지 언제나 동행과 함께다. 키티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데나 캠코더를 들이밀고, 인질과 함께 피아노를 치는, 뜨악할 정도로 모자란 동료들이 렉스와 함께 하고 있지 않은가.

'혼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 보상을 받는다. 수퍼맨은 지구로 돌아와 가족과 핏줄의 존재를 확인했고, 로이스는 수퍼맨과 재회함으로써 묵힌 감정을 풀어내 새로운 걸음을 뗄 수 있게 되었다. 렉스의 경우는 조금 독특하나 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최악의 수를 선택한 키티를 내치지 않는 걸 보면 렉스 역시 완벽한 '혼자'는 원치 않는 듯하다(키티 또한 한 마리 개를 끝까지 안고 있는 걸로 봐서 렉스를 떠날 운명은 아닌 모양이다. 키티의 개는 영화 시작 즈음 같은 종의 개를 먹어치운 녀석이다).

이쯤에서 시선을 주요 캐릭터가 아닌 엑스트라들에게 돌려보자. 야구장에 있다가 수퍼맨에게 환호를 보낸 사람들, 병원 앞에 모여 수퍼맨의 치유를 기원하던 사람들, 숱한 위험 속에서 얼굴 한 번 제대로 내비치지 못하고 스치듯이 지나간 사람들에게로 말이다.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바로 저들이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선 우리들과 더욱 가까운 인물들이다. 그들은 호기심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코앞에 위험이 닥쳤는데도 마치 남의 일인 듯 지켜보다가 환호를 보내고, 신문 헤드라인 크기 정도의 글씨에만 관심을 보이다가도 곧 모든 것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가벼운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예측 불허의 어두운 세상에 혼자 남겨지는 걸 두려워한다. 그리고 바로 그 두려움이 그들로 하여금 영웅을 찾게 만든다.

2. 영웅

사람들은 위험이 도사린 세상에서 영웅에 의해 구원을 받고자 하며, 그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조그만 위안이라도 얻으려 든다. 즉, 자신을 두려움에서 건져내겠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에서 영웅을 요구한다고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영웅은 쉽게 폐기 처분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에게 수퍼맨이 필요 없는 이유' 로이스가 퓰리처상을 받게 될 기사의 제목이다. '당신이 없어도 사람들은 잘 살았어요.' 왜 저런 기사를 썼느냐는 수퍼맨의 질문에 로이스가 한 대답이다. '혼자'가 가져다주는 부정적 감정들이 희미해져 갈 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웅을 잊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영웅은 이래저래 외로울 수밖에 없다. 돌아온 수퍼맨이라고 해서 그 점으로부터 자유로울 까닭이 없다. 그가 신과 같은 존재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태양에서 힘을 얻고, 사악한 유혹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을 올바르게 인도하기 위해서 지구로 보내졌으며, 비교하기조차 쑥스러울 만큼 월등한 능력을 소유했다. 그는 모든 소리를 한꺼번에 들으면서도 개인의 소리를 개별적으로 들을 수 있으며, 강력한 힘의 상징으로 세상 어디에나 나타나는 동시에 소박한 모습으로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는 영웅이자 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변덕을 부려 그를 외롭게 만든다. 게다가 이제는 그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세상은 영웅에게, 어쩌면 신에게 책임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3. 신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림으로써 죄의 유혹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했다. 예수는 사람들을 위해 몸소 자신을 낮추었지만 여전히 신은 신이었고, 사람들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건 신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 그럼으로써 신은 소박해졌지만 사람은 교만해졌다. 신의 영역을 노리고 신을 좌지우지하는 행위는 더 이상 희귀한 사건이 아니다.

<수퍼맨 리턴즈>의 큰 재난은 렉스의 소행에서 비롯된 것이나 그 실행이 수퍼맨의 소유물을 통해 비로소 가능케 됐다는 점은 앞서 적은 신과 인간 사이의 변화된 관계를 살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신의 영역을 노리는 (유혹에 빠진)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신을 향한 책임론이다. 그런데 여기서 관심을 가져야 할 내용은 후자의 경우다. 그것은 예수의 구원 행위와 수퍼맨의 행동을 바라보는 시각 사이의 차이점이자, 중간 지점에서 만난 신과 인간의 변화된 관계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쓰자면, 예수의 구원은 사람들을 향한 내리사랑의 의미가 컸고 그 자체로 은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수퍼맨이 땅 덩어리를 우주 공간으로 날려 보낸 것은 은혜의 의미보다 방관과 관리 소홀에 따른 책임이자 의무라는 의미가 더 크다. 이젠 신도 책임을 져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수퍼맨은 새로운 세상과, 변화된 신과 인간의 관계를 담고서 21세기로 돌아왔다. 20세기의 수퍼맨이 변함없이 돌아왔다 하더라도 이제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과 똑같을 수는 없다. 사람들은 흔들림 없는 확고한 영웅을 원하는 동시에 그에게 책임까지 요구한다. 영웅은 완전무결한 신이 되어야만 하지만 사람 위에 군림할 수도 없는 것이다. 어둠은 여전히 수퍼맨을 흔들지도, 침범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신을 끌어내린 사람들은 그를 흔들고 침범한다. 수퍼맨은 그런 세상에 돌아왔다.


원제 : Superman Returns(2006년)
감독 : 브라이언 싱어
출연 : 브랜든 루스(수퍼맨/클라크), 케이트 보스워스(로이스 레인), 케빈 스페이시(렉스 루터), 제임스 마스든(리처드), 파커 포시(키티), 프랭크 란젤라(편집장), 샘 헌팅턴, 에바 마리 세인트(마사 켄트), 데이빗 파브리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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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prelude 2006/07/16 21:14 # 답글

    너무 졸렸어요 ㅠ_ㅠ
  • ArborDay 2006/07/16 22:23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신은 죽었다(혹은 죽을 것이다)와 같은 협박이 되어버리는걸까요? ^^
  • 지킬 2006/07/17 11:24 # 답글

    prelude/ 전 가끔씩 3D 관람용 안경을 끼느라 그래도 흥미진진했습니다. IMAX DMR 3D용 예고편 펭귄은 정말 귀엽더군요. 물어 뜯어주고 싶었어요--;

    ArborDay/ ㅋ 요즘 사람들이라면 그런 협박 하고도 남을 겁니다^^
  • 잠본이 2006/07/17 11:53 # 답글

    '신의 책임론'에 대한 이야기가 신선하군요. 멋진 분석이었습니다. ;>
  • reme19 2006/07/18 00:16 # 답글

    저 역시 오랜만에 트랙백하는 듯..;; 좀 더 부지런해지겠습니다..
    그냥 넘아가기 쉬운 '수퍼맨=신'이라는 단순 도식에서 새로운 걸 발견하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 지킬 2006/07/18 11:11 # 답글

    잠본이/ 별 말씀을요. 비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공상의 나래만 펼치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reme19/ 모든 사건을 가능하게 한 수단이 수퍼맨의 수정이란 게 자꾸 걸렸었는데 그걸 저런 식으로 표현해봤습니다.
  • 석원군 2006/07/19 00:54 # 답글

    정말 잘쓰시는군요. 늘 감탄하고 갑니다.
  • 지킬 2006/07/19 10:55 # 답글

    과장 광고쟁이가 제 또다른 인격체 중 하나라서...^^;
  • 2006/09/19 19:2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지킬 2006/09/20 11:22 # 답글

    들러봐야겠습니다. 제가 회원이 아니라 아무래도 말씀하신 정보를 이용해야 할 듯싶군요.
  • 2006/10/24 02: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지킬 2006/10/24 11:20 # 답글

    애정이 대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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