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5월 07일
혈의 누, 이기적이고 나약한 인간들
인간은 이기적이다.살아있는 존재의 이기심은 그것의 생존본능만큼이나 기본적이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중용과 이타심을 강조하지만 누구에게나 있고 그래서 누구에게나 긍정적으로 작용될 수 있는 게 이기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기심'이란 단어는 대부분 긍정적인 색채를 갖지 못한 채 사용된다. 그 점은 <혈의 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위해 타인을 짓밟고 모함하며, 잘못을 감추기 위해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짓을 벌인다. 일신의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징벌을 가하는 것 역시 정의로 위장한 광기의 표현일 뿐이다.
인간은 나약하다.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고 마는 섬사람들의 광기는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인간 본성의 나약함의 또 다른 표출일 지도 모르겠다. 인정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영화 속 대다수 등장인물들은 이기적임으로 해서 원죄와 같이 떨쳐낼 수 없는 죄를 짊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죄를 마주하지 못한다. 죄는 인정하나 감당할 능력은 없을 정도로 나약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강객주의 죽음과 원한은 관련자를 비롯한 섬사람들에게 저주나 다름없다.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는,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고 싶은 저주. 결국 나약함과 이기심은 하나로 어우러져 밀고자에 대한 잔혹한 폭력으로 폭발된다. 하지만 사적인 린치는 나약함의 표현에 불과하기에 피가 비가 되어 내리는 순간, 그들은 무너지고 만다. 그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여전히 마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아가는가?
죄의식과 사랑은 복수를 낳았고, 과학과 올바른 사고로 무장된 정신은 뜻하지 않은 배신감에 흔들린다. 영화 속 모든 존재들은 과거의 잘못에 붙잡힌 채 오도 가도 못한다. 원규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지만 징벌을 통해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섬사람들과 대치하게 된다. 결국 나약함으로 인해 스스로 궤멸하는 그들과 함께 과거의 모든 관련자는 사라지고 만다. 피가 멎은 원규의 상처처럼 살인 사건은 해결되지만 진실을 공개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 특히 원규의 몫으로 남는다. 피는 멎었지만 벌어진 상처를 깨끗하게 봉합하는 것이 원규가 할 일인 것처럼 말이다. 원규는 섬을 떠나면서 뜻 모를 사연이 적힌 손수건을 바다에 버린다. 무슨 의미일까? 섬에서의 모든 악연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미? 아니면 과거 섬사람들처럼 자신의 양심을 외면하고 버리겠다는 의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인간은 나아가는가? 부디 그랬으면 한다.
제목 : 혈의 누(2005년작)
감독 : 김대승
출연 : 차승원(이원규), 박용우(김인권), 지성(두호), 최종원(차사), 유해진, 최지나(만신), 윤세아(소연), 천호진(강객주), 오현경(김치성), 정규수(호방), 권태원, 박철민
# by | 2005/05/07 00:12 | 영화...또다른 현실 | 트랙백(7)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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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케이터>는 곧 볼 생각이에요^^
레테/ 비위라... 사지절단은 잔인한 장면 쪽이겠지만 닭목을 쳐내는 장면은 비위가 울컥할 수도 있을 듯. 두 장면이 잔인함의 핵심이니 잘 판단해서 보시길^^
사극과 미스터리가 결합된 장르는 만들기 참 힘들 거 같아요. 시대 상황과 지나치게 어긋나도 안되고 너무 시대에 집착해도 곤란하고... 그래도 재미는 있죠. 한번에 두 가지를 접하는 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