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03일
피와 뼈, 도저히 털어낼 수 없는 불쾌함
영화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있을 때인 1920년대, 김준평이란 인물이 일본으로 건너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본에서 '괴물'이 되어버린 그와 그에게 시달리는 가족들, 주변 인물들을 보여주며 김준평의 일생을 그려내는 게 이 영화에 대한 요약이랄 수 있겠다. 최양일 감독의 영화는 때론 보기에 대단히 거북하다. 그 건조함이나 표현의 적나라함은 말할 것도 없고 몰락 또는 좌절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앞의 것들과 어울려 너무나 가슴 깊이 찔러오기 때문이다. 이 영화까지 단 4편만 보고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성급한 감이 있지만 무작위로 4편만 보고서도 이렇게 느낄 정도면 다른 영화들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피와 뼈>를 통해서 볼 때, 2차 대전 이후 일본은 일본 내 조선인들에게 결코 호락호락한 환경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치 쇳덩이를 몸에 두르고 물 속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환경 정도. 그런 곳에서 성공을 일구어낸 준평이란 인물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독한지는 충분히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다. 장면 장면 그의 행동, 모습들만을 봐도 너무나 빤히 보이니까. 그는 물욕, 정욕, 식욕의 화신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두 가지다. 돈과 자식. 엄밀히 말해서 돈과 자식에 대한 집념이다. 돈은 그의 피요, 자식은 그의 뼈다. 그렇기에 돈과 자식에 대한 집념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집념이지만 사랑과는 거리가 먼 탓에 그는 한없이 거대한 괴물로 다가온다. 애정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던 딸이었건만 딸의 장례식장에서 뿜어 나오는 그의 광기는 자신의 일부(뼈)를 잃었다는 데에서 나온 이기적인 상실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토록 혐오스럽고 무서운 괴물로 만들었을까? 영화는 명백하게 이유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젊은 시절의 준평이 몇 년의 세월이 흘러 기타노 다케시의 준평으로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는 이미 괴물로 변해있다. 이유에 대한 유추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겠다. 어쩐지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준평이란 인물에게 면죄부를 발급해주는 지점에 도달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 끔찍스럽게 이기적인 권위는 비난받고 돌을 맞아 마땅하지만 소수자, 비주류의 고통이 그들만의 고통이고 책임일 리는 없지 않은가.
앞서도 말했지만 감독은 사람들의 좌절과 몰락을 건조하게 잘 전달한다. 건조하다는 표현은 곧 우리 실생활과 잘 맞닿아 있다는 의미로도 통할 수 있을 것이다. <피와 뼈>에 나오는 인물들도 일본에서 '조센징'이라 불리며 세월을 견뎌내는 실존들이다. 여인들은 쉽사리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주의는 좌절하며, 준평 역시 늘그막에는 설 자리가 마땅치 않다. 소수자들은 끊임없이 고통을 참아내고 이를 악물지만 그 대가로 주어지는 건 도대체가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 좌절이다. 몰리고 몰리다 결국은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의심으로 치닫고 마는 그 무력함을 어찌 해결한단 말인가.
<피와 뼈>는 최양일의 영화이면서 동시에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다. 준평의 폭력과 욕정을 이리 무심하게 묘사할 감독이 누가 있겠으며, 준평이란 괴물을 이토록 적절히 구현해낼 배우는 또 누가 있겠는가. 이 글을 쓰기 위해 2시간이나 멍청히 있다가 때려치우고 하루가 지나서야 이나마 적어 내려왔다. 김준평이란 존재를 스크린에서 다 털어내고 왔어야 했다.
원제 : 血と骨(2004년)
감독 : 최양일
원작 : 양석일 <血と骨>
출연 : 기타노 다케시(김준평), 스즈키 교카(이영희), 아라이 히로우미(마사오), 타바타 토모코(하나코), 마츠시게 유타카, 오다기리 죠(다케시), 나카무라 유코(키요코), 데라시마 스스무, 하마다 마리(사다코), 카시와바라 슈지(찬명), 시오미 산세이, 쿠니무라 준
꼬리말) 유쾌한 분위기의 글을 써보겠다는 결심은 칼을 뽑아 휘둘러보기도 전에 제지를 당했다. 이 영화로 인해 아주 태클을 당해도 제대로 당한 셈이다. 조만간 헤헤거리며 웃을 수 있는 코미디 영화나 화끈한 액션 영화를 한 편 봐야겠다. 내가 비정상인 것이더냐! 어찌 이리 보는 영화마다 어둡단 말인가. 음... 도착할 DVD 목록을 보고 다시 좌절TT 스탠리 큐브릭 <배리린든>, 팀 버튼 <배트맨1,2>, 데이빗 크로넨버그 <데드존>. 얼쑤, 경사 났다--;
# by | 2005/03/03 00:07 | 영화...또다른 현실 | 트랙백(2)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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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피와 뼈 - 가부장과 질곡의 가족사
기타노 다케시의 출연 및 감독 작품은 여기로 양석일의 원작 소설을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하고 최양일이 감독을 맡은 ‘피와 뼈’는 일제 시대에 제주에서 오사카로 이민 간 사나이 김준평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년에 몇몇 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상당히 오랫동안 기다린 작품인데 이제서 감상하게 된 소감은 다소 평범하다는 것입니다. 폭력과 섹스에 굶주린 듯한, 제 멋대로 살았던 작가의 아버지를 모델로 씌어진 이 영화가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잘 모르겠더군요. 가부장으로 인해 가족 전체가 불행해진다는 메시지였......more
제목 : 피와 뼈 - 외면하고 싶은 굴레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음울하고 불편한 영화일 줄은 몰랐다. 희망의 눈빛을 품고있던 제주청년 김준평은 어느덧 중년, 오사카의 김준평이 되어있다. 청년 김준평이 얼굴이 깊은 골을 가진 무표정한 김준평이 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예상할 뿐이며 영화는 이미 폭력적인 가부장, 비열하고 비정한 수컷으로서 살아가는 김준평을 보여 줄 뿐이다. 김준평은 시종일관 무표정하지만 주변의 인물의 운명을 쥐고 흔드는 공포를 뿜어낸다. 그의 이마에 자리잡은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more
가뜩이나 티비를 안 보는 제가 얼마전에 우연히
'웃찾사'를 봤거든요.
요즘들어서 더욱 더 심해진것 같은데
다들 재미있어 해도 저에겐 그저 그랬고
아무리 슬퍼도 그냥 그랬었는데
그 '웃찾사' 코너 중 '화상고'
(영화 화산고의 패러디인데요...내용과는 상관없어보입니다.)
그거 보고서 정말 오랜만에 아무생각없이 웃었습니다.
아 그리고 삐와뼈 저 영화는 꼭 보고 싶습니다.
타케시는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키즈 리턴'
이거는 저만의 베스트 영화 상위권입니다.
그래도, 잘 봤다. 싶지 않던가요 ㅎㅎ ;;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철함...그리고 살아남아 자신의
핏줄을 심어놓은 그들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ozzyz/ <피와 뼈>를 적극 추천하시는 포스팅 덕택에 여러 사람 잡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렸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놓쳐버리기엔 더욱 아쉬운 영화더군요.
얼른 봐야할 영화인것 같습니다.
RocknCloud/ 기회가 되신다면 꼭 보세요. 하지만 시작하고 5분도 안돼서 불쾌해지실 수도 있습니다.
검은바다/ 그러셨군요. 어쩌면 공포 영화보다 더 심기를 건드리는 영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shuai/ 저도 잘린 장면이 포함된 온전한 영화로 나타나길 바랍니다.
분명 뭔가 보고나서 좋은 기분이 들수가 없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기타노 다케시의 연기를 보고싶은건 어쩔수없는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