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화 2 기억들

몇 시간 후 아침. 사람도 고양이도 얼마 전 벌어진 소동의 충격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전투가 시작되려 하는 참이다. 소동 후 몇 시간이 지났다고 난 마음이 약해진 상태였다. 멱살잡이에 대해 미안함도 있고 딱 맞는 환묘복이 불편해 보여서 찍찍이를 뜯은 다음 살짝 헐겁게 조절을 해줬다. 그런데 그 상황이 고양이에게 새로운 상황인식을 하게끔 했다. 등 부위에 저걸(찍찍이) 뜯어내면 내가 자유로워지는구나. 녀석은 꽤 신중했다. 바로 행동을 옮기는 대신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일단 찾았다. 그리곤 찍찍이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내 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주방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부딪히는, 무언가 구르는 듯한 소리. 방에서 나가 소리가 나는 쪽을 봤는데 고양이가 마룻바닥을 구르는 중이었다. 목을 등 쪽으로 돌려서 찍찍이를 물고 당기자 몸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듯했다. 오른쪽으로 뒹굴 뒹굴. 싱크대에 가로막히자 반대 방향으로 물고 왼쪽으로 뒹굴 뒹굴. 서커스단에서 버려진 고양이였나? 저걸 핸드폰으로 찍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녀석은 내 존재를 알아차렸다. 사람과 고양이, 어이없음과 당황함의 대치. 그 뒤로도 녀석은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리고 기어이 그날이 가기 전에 찍찍이의 일부를 옷감에서 뜯어내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그 집념과 그 발악에 기가 차서 화도 나지 않았다. 살짝 찢겨 나간 찍찍이를 보면서 눈만 껌뻑이다가 어떤 물건이 생각나 그걸 찾아 조치를 취했다. 의사 선생님이 고양이 몸에 붕대를 감듯이 옷 위로 박스테이프를 감은 것이다. 물론 숨은 쉬고 몸은 움직여야 하니 여유를 두고 두어 바퀴 감았다. 이걸로 끝일까?

아니다. 고양이는 매끄럽게 이어진 테이프의 끝을 찾지 못했는지 이번엔 그냥 바둥거리며 다리를 옷에서 빼내려고 했다. 발이 들어간 부분을 입으로 물어 벌린 다음 발을 빼내려고 몸을 마구 움직이는 식으로. 옷을 벗기고 넥카라를 씌울까? 저렇게 딱 맞는 옷도 찢고 뜯는데 목에 두른 넥카라가 버틸 수 있을까? 그건 아니지 싶다. 그 후로 난 고양이의 다양한 스타일을 봐야만 했다. 왼쪽 앞다리가 목을 넣는 구멍에 같이 들어간 채 세 다리로 서서 이것 좀 어떻게 해보라는 듯 나를 쳐다보는 고양이와 한참을 마주 보고 있었으며 두 앞발이 한 구멍에 같이 들어가 있어서 그 부분을 가위로 잘라 넓혀줘야 했고 뒷다리 한쪽을 옷 구멍에서 뺐지만 옷 안에서 나올 곳을 찾지 못한 채 세 다리로 누워있는 녀석을 보기도 했다. 새로 주문한 다른 환묘복이 오기 전까지 고양이의 다양한 포즈와 패션 감각을 확인하면서 수술 부위가 덧나지 않을까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치열했던 주말이 지나가고 새 옷이 도착했다. 처음 주문했던 옷은 그루밍을 하지 못하게 몸통을 완벽하게 감싼 형태였다면 다시 주문한 환묘복은 파일 곳은 파여서 그루밍의 여지가 있는 비교적 여유로운 스타일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처음 옷은 7~80년대 여성들이 입던 원피스 수영복 느낌이고 두 번째 옷은 요즘 스타일의 원피스 수영복이랄까. 녀석도 근 이틀 동안 발악에 지쳤는지 새 옷을 입히는 동안 얌전히 호응해줬다. 물론 싫다고 으응 소리를 내긴 했지만, 그쯤이야 뭐. 새 옷을 입혀놓자 놀랍게도 녀석은 내 다리 위로 올라와 꾹꾹이와 골골송을 불러대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첫 번째 옷은 이 녀석 성향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나마 편안하다니 다행이구나.

수술 날로부터 2주 후. 드디어 환묘복을 벗는 날이다. 수술 부위는 잘 아물었고 녀석도 다시 똘끼를 맘껏 발산 중이라 옷만 벗기면 다시 정상 생활(?)로 돌아가는 거다. 옷을 벗기고 수술 부위를 확인한 다음 녀석을 마루 위에 놓아줬다. 혹시나 내가 또 옷을 입히려 할까 봐 녀석은 마루 저 멀리 줄행랑을 친다. 그곳에서 나를 한동안 쳐다보더니 별 낌새를 못 느꼈는지 그동안 옷에 가려있던 몸통을 열심히 그루밍하기 시작한다. 마침 조카가 카톡을 보내와 꽤 오래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녀석은 그때까지도 그루밍 중이다.

어이 냐옹이, 좀 쉬었다 해라. 혓바닥 마비되겄다.

혀를 빼물고 힐끗 나를 쳐다본 고양이는 개소리다 싶었는지 역시나 깔끔히 무시하고 하던 일을 다시 한다.

저, 저 개눔의 자식...

꼬리말) 옷을 입힐 경우가 생길 때 그 기능이나 디자인도 고려해야겠지만 성향에 맞게 제품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 싶다. 우리 집 고양이는 뭘 덮어주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이불 안으로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아이에게 몸통을 완벽하게 감싸는 옷은 아무리 그루밍 방지를 위해서라지만 좋은 선택은 아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관찰 동물이라고도 하던데 아이의 습득력이나 영악함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행동을 조심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과 맞닥뜨리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중성화 1 기억들

밤늦게, 또는 새벽에 우는 경우가 잦아졌다. 왜 우냐? 자자.
주변 사물에 얼굴이나 몸을 비빌 때가 많아졌다. 애교가 늘었나?
갑자기 몸을 비틀 듯 뒹굴 때가 있는데…. 그제야 알아챘다. 이런! 발정기구나...

대비를 안 했던 건 아니다. 입양 후 병원에 가서 한 달 간격으로 종합 백신을 세 번 접종하고 1월 초에 중성화 수술하기로 예약을 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고양이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새벽에 울기 시작할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고양이 발정기 때 울음소리를 아이가 우는 거 같은 그런 소리로 기억하던 탓에 미처 깨닫지 못하고 며칠을 흘려보냈다. 사태를 파악하고서 바로 동물병원에 방문해 수술 예약 날짜를 앞당겼다. 그 주 토요일 오전에 수술 일정이 잡혔고 3~4일 정도 여유가 있어서 준비물들을 챙기기 위해 반려동물용품 매장도 들르고 인터넷으로 주문도 했다. 가게에서 산 건 넥카라 하나.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물건이지만 넥카라를 쓴 고양이들이 화장실에서 실수해 넥카라에 똥이나 오줌을 묻히고 나오는 일도 있다고 해서 그냥 비상용으로 준비했다. 대신 수술 후 고양이가 수술 부위를 그루밍하지 못하게 하려고 환묘복을 주문했다. 이틀 내에 도착할 수 있고 탈착이 쉽도록 등 부위에 벨크로(찍찍이)가 달린 걸로. 사실 환묘복도 필요 없지 싶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을 마치고 붕대로 배와 등 주변을 빙 둘러 감아놓으실 거라 해서 수술 부위 그루밍은 어차피 불가능할 거 같았거든. 그래도 혹시나 해서 주문은 해봤다. 의사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처럼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하셨더랬다. '붕대를 풀어 헤치는 애가 가끔 있어요. 물어뜯어서 아예 갈가리 찢어놓은 애도 본 적이 있습니다.' 흠...

수술 당일. 아침에 병원에 맡겨놓고 3시간 정도 뒤에 병원에서 수술 잘 됐다고 전화가 와서 고양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는 마취가 풀려서 정신은 차렸지만,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상태는 아니었다. 선생님께 주의사항을 듣고 약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워낙 병원을 싫어하는 터라 집에서 회복하는 게 더 낫지 싶었다. 이동장에서 조심스럽게 꺼내서 이불 위에 올려두자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려 했다. 뒷다리와 꼬리 쪽은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이동은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30분? 1시간? 뒷다리에 조금씩 힘이 돌아오면서 녀석은 방을 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 의도가 보여서 내가 안아서 화장실에 넣어줬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건 맞다. 바로 볼일을 봤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꼬리와 뒷다리 쪽이 마취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는 거다. 꼬리가 부자연스럽다 보니 똥이 꼬리에 묻었고 이동도 쉽지 않아서 뒷다리에도 똥이 묻고 말았다. 나야 몸 상태가 저러니 당연한 일이겠거니 생각하고 닦아줬지만, 고양이는 아니었다. 마취가 뭔지도 모를뿐더러 자기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도 이상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몸에 똥까지 묻혔으니. 녀석은 이 당황스러운 현상의 원인을 평소와 다른 몸 상태에서 찾았다. 바로 몸에 감긴 붕대.

수술 전 금식도 하고 12시쯤 수술을 마쳤으니 그날 온종일 힘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녀석은 내 생각보다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밤이 되고 마취가 완전히 풀리면서 온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녀석은 오로지 한 가지 일에 집중했다. 붕대를 물어뜯는 일. 위쪽 아래쪽 옆쪽. 고양이 몸의 유연함이 마음껏 발휘되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마음속으로 한가지 단어만 읊조렸다. 설마…. 그리고 그날 새벽 일이 터졌다.

수술 후 의사 선생님은 절개 부위에 거즈를 덧댄 후 붕대를 두르고 등 쪽에서 매듭을 지어 묶은 다음 그 위에 하얀 반창고를 붙여놓으셨다. 꽤 꼼꼼하게 마무리되어 있어서 넥카라든 환묘복이든 필요 없을 거라 여겼는데 녀석의 집요함 앞에 그 모든 게 허사였다. 사실 잠들기 전 반창고가 살짝 들떠있는 걸 보긴 했다. 하지만 사람처럼 손을 쓰는 것도 아니고 등 쪽이라 더는 뭘 어쩌겠냐 싶어서 그냥 꾹 눌러놓기만 했는데... 녀석은 그 부위만 집중적으로 공략했던 거 같다. 새벽. 잠이 깨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고양이가 없었다. 불안하기도 하고 괜찮은지 걱정되기도 해서 녀석을 찾아 나섰다. 마루엔 없네. 그럼 작은 방에 있나? 불을 켠 순간 입에서 헉 소리가 나왔다. 붕대가 반쯤은 풀려 있었다. 매듭 주변이 찢겨서 바깥쪽도 풀려 있었고 아주 발악했던 모양인지 배 쪽 맨살에 닿아있어야 할 붕대가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전체적으로 헐거워진 상태라 수술 부위에 덧대놓은 피 묻은 거즈가 보일 정도였다. 상태가 그 모양인데 날 보고 도망가지도 않았다. 도망가기는커녕 여유롭게 누워 앞발을 그루밍하면서 나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게다가 그 표정. 전에 본 적이 있었다. 안방 삼층장 위에 처음 올라갔을 때 '나 잘 했지!' 하던 그 표정.

문제가 생겼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저 시점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고양이가 아니라 나였다. 3개월 경력의 초보 집사. 여리여리한 고양이 몸을 부서질까 봐 세게 잡지도 못하는 사람. 거기에 갑자기 닥친 상황에 머릿속까지 새하얘질 만큼 당황한 반백 살 남성. 저게 나였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붕대를 풀어서 다시 묶을까?(지금 생각해보면 어림도 없는 얘기다)

저 상태에서 붕대 위로 박스테이프를 감아버릴까?(흠.. 황당한 발상 같지만, 곧 일어날 일이다...)

아니야, 붕대는 이미 끝장난 거 같은데 거즈만 두고 그 위로 테이프를 감을까?(누가 얘 좀 말려봐...)

새하얘진 머릿속에서 뜬금없는 생각들이 휩쓸고 간 뒤 내린 결정은,

그래, 붕대를 풀고 거즈만 둔 상태에서 옷을 입히자.

나름 해결책을 내놓았으니 일사천리로 진행하지 싶었는데 웬걸. 고양이가 가만있어 주질 않았다. 붕대를 풀 때부터 바둥바둥.

아우, 가만히 좀 있어봐라.

고양이 앞에서 무슨 개소리냐 싶었던지 싹 무시하고 계속 버둥버둥.

아우, 가만히 좀 있어 보라고, 이 개눔의 자식아!

고양이 자식이지 개자식이 아니니까 역시 또 개 무시. 고양이를 잘 잡지도 못하겠고 배 부위는 수술 부위 때문에 더욱 손을 대기 어렵고. 앞발 둘과 뒷발 하나를 옷에 끼운 상태에서 난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아, 좀 가만히 있어 보라고! 너 때문에 이러는 거잖아!

인간 세상에서 50년쯤 살면서 나름 많은 일을 겪었다 싶었는데... 살면서 고양이 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뭐, 당하는 고양이도 그건 마찬가지겠지만. 어쨌든 평생 잊지 못할 장면 하나 추가한 뒤에 찍찍이를 채우는 데 성공하긴 했다. 후유증은 컸다. 우선 사람으로 태어나서 고양이 멱살까지 잡아야 하나 싶은 자괴감에 빠진 나. 그리고 멱살 잡히고 욕먹고 하늘색 환묘복까지 입은 채 의기소침해진 환자 고양이. 수술 부위에 덧대어 있어야 했지만 난리 통에 퉁겨져 나와 바닥에 팽개쳐진 거즈. 한참을 씩씩거리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주변 정리를 하고 고양이 상태를 쓱 살펴본 후 잠을 자러 갔다. 아니... 도망쳤다. 옷을 입혀놨더니 옆으로, 뒤로 걷는 일명 고장난 고양이를 보고도 픽 웃고 말았다. 맘껏 웃기엔 너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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