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후 아침. 사람도 고양이도 얼마 전 벌어진 소동의 충격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전투가 시작되려 하는 참이다. 소동 후 몇 시간이 지났다고 난 마음이 약해진 상태였다. 멱살잡이에 대해 미안함도 있고 딱 맞는 환묘복이 불편해 보여서 찍찍이를 뜯은 다음 살짝 헐겁게 조절을 해줬다. 그런데 그 상황이 고양이에게 새로운 상황인식을 하게끔 했다. 등 부위에 저걸(찍찍이) 뜯어내면 내가 자유로워지는구나. 녀석은 꽤 신중했다. 바로 행동을 옮기는 대신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일단 찾았다. 그리곤 찍찍이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내 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주방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부딪히는, 무언가 구르는 듯한 소리. 방에서 나가 소리가 나는 쪽을 봤는데 고양이가 마룻바닥을 구르는 중이었다. 목을 등 쪽으로 돌려서 찍찍이를 물고 당기자 몸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듯했다. 오른쪽으로 뒹굴 뒹굴. 싱크대에 가로막히자 반대 방향으로 물고 왼쪽으로 뒹굴 뒹굴. 서커스단에서 버려진 고양이였나? 저걸 핸드폰으로 찍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녀석은 내 존재를 알아차렸다. 사람과 고양이, 어이없음과 당황함의 대치. 그 뒤로도 녀석은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리고 기어이 그날이 가기 전에 찍찍이의 일부를 옷감에서 뜯어내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그 집념과 그 발악에 기가 차서 화도 나지 않았다. 살짝 찢겨 나간 찍찍이를 보면서 눈만 껌뻑이다가 어떤 물건이 생각나 그걸 찾아 조치를 취했다. 의사 선생님이 고양이 몸에 붕대를 감듯이 옷 위로 박스테이프를 감은 것이다. 물론 숨은 쉬고 몸은 움직여야 하니 여유를 두고 두어 바퀴 감았다. 이걸로 끝일까?
아니다. 고양이는 매끄럽게 이어진 테이프의 끝을 찾지 못했는지 이번엔 그냥 바둥거리며 다리를 옷에서 빼내려고 했다. 발이 들어간 부분을 입으로 물어 벌린 다음 발을 빼내려고 몸을 마구 움직이는 식으로. 옷을 벗기고 넥카라를 씌울까? 저렇게 딱 맞는 옷도 찢고 뜯는데 목에 두른 넥카라가 버틸 수 있을까? 그건 아니지 싶다. 그 후로 난 고양이의 다양한 스타일을 봐야만 했다. 왼쪽 앞다리가 목을 넣는 구멍에 같이 들어간 채 세 다리로 서서 이것 좀 어떻게 해보라는 듯 나를 쳐다보는 고양이와 한참을 마주 보고 있었으며 두 앞발이 한 구멍에 같이 들어가 있어서 그 부분을 가위로 잘라 넓혀줘야 했고 뒷다리 한쪽을 옷 구멍에서 뺐지만 옷 안에서 나올 곳을 찾지 못한 채 세 다리로 누워있는 녀석을 보기도 했다. 새로 주문한 다른 환묘복이 오기 전까지 고양이의 다양한 포즈와 패션 감각을 확인하면서 수술 부위가 덧나지 않을까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치열했던 주말이 지나가고 새 옷이 도착했다. 처음 주문했던 옷은 그루밍을 하지 못하게 몸통을 완벽하게 감싼 형태였다면 다시 주문한 환묘복은 파일 곳은 파여서 그루밍의 여지가 있는 비교적 여유로운 스타일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처음 옷은 7~80년대 여성들이 입던 원피스 수영복 느낌이고 두 번째 옷은 요즘 스타일의 원피스 수영복이랄까. 녀석도 근 이틀 동안 발악에 지쳤는지 새 옷을 입히는 동안 얌전히 호응해줬다. 물론 싫다고 으응 소리를 내긴 했지만, 그쯤이야 뭐. 새 옷을 입혀놓자 놀랍게도 녀석은 내 다리 위로 올라와 꾹꾹이와 골골송을 불러대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첫 번째 옷은 이 녀석 성향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나마 편안하다니 다행이구나.
수술 날로부터 2주 후. 드디어 환묘복을 벗는 날이다. 수술 부위는 잘 아물었고 녀석도 다시 똘끼를 맘껏 발산 중이라 옷만 벗기면 다시 정상 생활(?)로 돌아가는 거다. 옷을 벗기고 수술 부위를 확인한 다음 녀석을 마루 위에 놓아줬다. 혹시나 내가 또 옷을 입히려 할까 봐 녀석은 마루 저 멀리 줄행랑을 친다. 그곳에서 나를 한동안 쳐다보더니 별 낌새를 못 느꼈는지 그동안 옷에 가려있던 몸통을 열심히 그루밍하기 시작한다. 마침 조카가 카톡을 보내와 꽤 오래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녀석은 그때까지도 그루밍 중이다.
어이 냐옹이, 좀 쉬었다 해라. 혓바닥 마비되겄다.
혀를 빼물고 힐끗 나를 쳐다본 고양이는 개소리다 싶었는지 역시나 깔끔히 무시하고 하던 일을 다시 한다.
저, 저 개눔의 자식...
꼬리말) 옷을 입힐 경우가 생길 때 그 기능이나 디자인도 고려해야겠지만 성향에 맞게 제품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 싶다. 우리 집 고양이는 뭘 덮어주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이불 안으로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아이에게 몸통을 완벽하게 감싸는 옷은 아무리 그루밍 방지를 위해서라지만 좋은 선택은 아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관찰 동물이라고도 하던데 아이의 습득력이나 영악함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행동을 조심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과 맞닥뜨리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아니다. 고양이는 매끄럽게 이어진 테이프의 끝을 찾지 못했는지 이번엔 그냥 바둥거리며 다리를 옷에서 빼내려고 했다. 발이 들어간 부분을 입으로 물어 벌린 다음 발을 빼내려고 몸을 마구 움직이는 식으로. 옷을 벗기고 넥카라를 씌울까? 저렇게 딱 맞는 옷도 찢고 뜯는데 목에 두른 넥카라가 버틸 수 있을까? 그건 아니지 싶다. 그 후로 난 고양이의 다양한 스타일을 봐야만 했다. 왼쪽 앞다리가 목을 넣는 구멍에 같이 들어간 채 세 다리로 서서 이것 좀 어떻게 해보라는 듯 나를 쳐다보는 고양이와 한참을 마주 보고 있었으며 두 앞발이 한 구멍에 같이 들어가 있어서 그 부분을 가위로 잘라 넓혀줘야 했고 뒷다리 한쪽을 옷 구멍에서 뺐지만 옷 안에서 나올 곳을 찾지 못한 채 세 다리로 누워있는 녀석을 보기도 했다. 새로 주문한 다른 환묘복이 오기 전까지 고양이의 다양한 포즈와 패션 감각을 확인하면서 수술 부위가 덧나지 않을까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치열했던 주말이 지나가고 새 옷이 도착했다. 처음 주문했던 옷은 그루밍을 하지 못하게 몸통을 완벽하게 감싼 형태였다면 다시 주문한 환묘복은 파일 곳은 파여서 그루밍의 여지가 있는 비교적 여유로운 스타일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처음 옷은 7~80년대 여성들이 입던 원피스 수영복 느낌이고 두 번째 옷은 요즘 스타일의 원피스 수영복이랄까. 녀석도 근 이틀 동안 발악에 지쳤는지 새 옷을 입히는 동안 얌전히 호응해줬다. 물론 싫다고 으응 소리를 내긴 했지만, 그쯤이야 뭐. 새 옷을 입혀놓자 놀랍게도 녀석은 내 다리 위로 올라와 꾹꾹이와 골골송을 불러대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첫 번째 옷은 이 녀석 성향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나마 편안하다니 다행이구나.
수술 날로부터 2주 후. 드디어 환묘복을 벗는 날이다. 수술 부위는 잘 아물었고 녀석도 다시 똘끼를 맘껏 발산 중이라 옷만 벗기면 다시 정상 생활(?)로 돌아가는 거다. 옷을 벗기고 수술 부위를 확인한 다음 녀석을 마루 위에 놓아줬다. 혹시나 내가 또 옷을 입히려 할까 봐 녀석은 마루 저 멀리 줄행랑을 친다. 그곳에서 나를 한동안 쳐다보더니 별 낌새를 못 느꼈는지 그동안 옷에 가려있던 몸통을 열심히 그루밍하기 시작한다. 마침 조카가 카톡을 보내와 꽤 오래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녀석은 그때까지도 그루밍 중이다.
어이 냐옹이, 좀 쉬었다 해라. 혓바닥 마비되겄다.
혀를 빼물고 힐끗 나를 쳐다본 고양이는 개소리다 싶었는지 역시나 깔끔히 무시하고 하던 일을 다시 한다.
저, 저 개눔의 자식...
꼬리말) 옷을 입힐 경우가 생길 때 그 기능이나 디자인도 고려해야겠지만 성향에 맞게 제품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 싶다. 우리 집 고양이는 뭘 덮어주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이불 안으로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아이에게 몸통을 완벽하게 감싸는 옷은 아무리 그루밍 방지를 위해서라지만 좋은 선택은 아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관찰 동물이라고도 하던데 아이의 습득력이나 영악함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행동을 조심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과 맞닥뜨리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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